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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비의 소소한 창작이야기1-수학이야기-

민들레향기-사랑하기에 어쩔 수 없이 떠난다. 그 말은 정말 존재하더라. 본문

구슬픈 사랑이야기(love time)

민들레향기-사랑하기에 어쩔 수 없이 떠난다. 그 말은 정말 존재하더라.

jun.DK 2019. 6. 13. 21:57

 

#94 농촌 길가, 차안/

 

승용차 한대가 밭두렁 위를 달리고 있다. 민수가 운전하고, 뒷좌석엔 동주가 타고 있다. 동주는 통증이 찾아왔는지 고통스러워 얼굴이 일그러진다. 동주는 자신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민수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주먹을 자신의 입안에 틀어 담고 끙끙거리며 고통을 이겨낸다. 민수는 운전에 정신을 팔려있어 동주가 통증을 느끼며 아파하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 동주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마약성분 진통제가 들어있는 작은 알약 통을 꺼내 알약 두 방울을 입안에 털어놓는다.

 

민수 :정말 오랜만에 이곳에 오네.

 

민수는 동주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룸미러로 뒷좌석을 살펴본다.

동주는 머리를 뒤로 제쳐놓고 눈을 감고 있다.

 

민수 :지칠 만도하. (짧은 한숨을 내쉰다) 자신의 목숨보다 더 아끼던 사람과 원치 않는 이별을 했으니까.

 

동주의 뺨으로 굵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95 허름한 작은 가옥 마당/ 방안.

 

십여 년 동안 사람의 손때가 닿지 않아 거미줄이며 먼지투성이, 흉가가 되어버린 가옥 앞에 두 사람은 서 있다. 민수는 이런 집에서 동주 혼자 살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며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연다.

 

민수 :정말 이곳에서 살 수 있겠어. 귀신이라도 나올듯한 폐가가 다 돼버렸는데.

동주 :(무기력하다) 청소하면 괜찮아질 거야.

민수 :아무리 깨끗하게 청소한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살기엔 힘들 것 같은데.

동주 :(가옥 안으로 들어가며) 겉모습은 이렇게 폐허가 되었지만... 그래도 마음은 편해 내가 태어나서 내가 자랐던 곳이니까?

민수 :(따라 들어가며) 이곳에서 살려면 최소한 손을 봐야겠어.

 

길게 늘어진 전선에 백열등 옆에는 전원 스위치가 달려있다.

동주는 스위치를 켜보지만 좀처럼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동주 :이제 금방 흙으로 돌아가야 할 텐데. 이런 곳이면 어떻고 저런 곳이면 어떠하겠어.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고향이 있고, 고향엔 아직도 내가 자랐던 집이 이렇게 존재한다는 게 중요하지.

 

민수는 램프를 길게 늘어진 전선에 달아놓는다. 그제야 방안이 환해진다.

방안은 더할 말을 잃어버릴 정도로 너무나도 심하다. 신문지로 도배된 신문은 검게 변해있고 곰팡이며 거미줄 먼지투성인 방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좀처럼 막막하다.

 

동주 :(비닐봉지에서 청소도구를 찾아내며) 비바람만 피할 수 있으면 되는 거야. 궁궐 같은 집이 있다고 죽을 때 짊어지고 갈 수도 없는 거잖아.

민수 :(동주에게서 청소도구를 뺏으며) 정말 이런 곳에서 혼자 살 수 있겠어?

동주 :(죽음 앞에서 삶에 통달하듯 평온한 얼굴로)원래 사람은 혼자잖아. 죽을 때나 태어날 때나.

민수 :(빗질하며) 정말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네.

동주 :그냥 대충 쓸고 닦아놓으며 돼. 이제 금방 사라질 몸뚱인데.

민수 :그래도 사는 동안은 깨끗하게 살다가 가야지.

 

동주는 먼지떨이를 들고 방안에 있는 거미줄을 털어낸다.

 

민수 :(동주를 보며) 청소는 내가 할 테니까. 넌 잠시 나가 있어. 몸도 안 좋은데 먼지까지 먹어서야 되겠어.

동주 :그래도 내가 살 곳인데 내가 해야지.

 

민수는 동주에게서 먼지떨이를 뺏고 방에서 끌어낸다.

 

민수 :이 좁은 방을 청소하는데 오히려 거치적거리니까. 넌 밖에서 좀 쉬고 있어.

 

민수는 청소하기 위해 준비한 마스크를 착용하고, 빗자루로 거미줄이며 벽에 시커멓게 달라붙어 있는 먼지들을 털어내기 시작한다.

 

#96 툇마루.

 

동주는 툇마루에 힘없이 앉아있다.

 

동주 :민수야 대충해.

민수e :알았어.

 

동주는 수돗가가 있는 곳을 봐라본다. 수돗가가 뿌옇게 들어오며,

 

인서트 과거

수돗가엔 할머니와 천둥벌거숭이였던 자신의 어린 시절이 들어온다. 할머니는 어린 동주 등목해주고 있다. 어린동주는 그런 할머니에게 투정을 부르고 있다.

 

어린동주 :할머니 차가워 차갑단 말이야!

할머니 :허참! 요 녀석 차갑기는 쉬워하기만 하구면.

어린동주 :할머니 바지가 젖잖아. 그리고 가을에 이런 차가운 물로 목욕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래.

할머니 :요 녀석 엊그제가 여름이었는데. 뭐가 그리 춥다고 하뇨.

 

수돗가에서 등목하면서 할머니에게 투정부리는 환상을 보고 있는 동주의 입가에 미소가 스며든다.

 

동주 :(그리움, 애절하게) 할머니...

 

민수는 빗자루 질을 끝내고 수건 두 장을 들고 수돗가로 향한다.

수도꼭지에 물을 틀어보지만 좀처럼 물이 나오지 않는다.

 

민수 :(혼잣소리)이런 물이 나오지 않네.

 

동주는 툇마루에서 힘겹게 일어나 민수 곁으로 다가간다.

 

동주 :수도계량기를 잠겨둬서 그래.

 

동주는 수도계량기 뚜껑을 열고 수도계량기밸브를 돌리는데, 힘이 없어서인지 수도계량기밸브는 좀처럼 돌아가지 않는다. 민수는 그런 모습을 보다가 조심스레 동주를 옆으로 나오게 하고 계량기밸브를 돌린다. 수도 계량기밸브가 열리자 수돗물이 콸콸 쏟아져 내린다. 민수는 새 대야에다가 물을 받고 수건을 빤다.

 

민수 :(의아스럽다며) 그런데 여기 수도세를 내고 있었던 거야.

동주 :.

민수 :이곳을 떠난 지 십여 년이 넘었는데 수도세를 내고 있었다고.

동주 :, 나중에 나이 먹으면 이곳에 자그마한 정원주택이나 짓고 조용히 살까 해서....

 

민수는 수건을 다 빨고 일어나며 주위를 돌아본다. 어두운 산골...

 

민수 :(깊게 심호흡하며) , 공기가 정말 좋다. 속이 깨끗해지는 느낌이 드네.

 

 

#97 방안.

 

방안에 은박돗자리가 깔려있고, 그 위로 새 이부자리가 펼쳐져 있다. 두 사람은 나란히 누워있다.

 

동주 :민수야 정말 고마워.

민수 :(한숨)어휴~ 어떻게 너 같은 놈이 이런 몹쓸 병에 걸린 건지. 세상에 악한 사람들이나 걸려야 하는 병을.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나쁜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민수는 말을 하다가 욱하고 말을 잇지 못하고 끝내 뺨으로 눈물 한 줄기가 흘러내리고 만다.

 

동주 :이게 내 운명인대... 누굴 탁하겠어. 더러운 내 운명인대.

 

민수는 일어나 램프를 끊다.

램프가 꺼지면서 F. O.

 

#98 뒤뜰 . 이른 아침

 

F. I.

뒤뜰에는 감나무 한그루가 있다. 감나무 잎은 하나도 없이 가지만 앙상하게 뻗어있는 감나무. 감나무가지 끝부분에는 익을 대로 익은 감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새들이 감을 파먹었는지 감 중간엔 구멍이 뻥 뚫린 것들도 있다. 바람이 매섭게 불자 감나무가지가 흔들거리더니 이내 동주 발밑으로 익을 대로 익은 감하나가 뚝 떨어진다. 동주는 자신의 발밑으로 떨어져 묵사발이 된 감을 줍기 위해 주저앉는다. 감을 주워 감속에 있는 내용물을 쪽쪽 빨자 달콤한 내용물이 입안으로 흡입된다.

 

민수 :(동주 옆으로 다가와 선다) , 아직도 감이 나무에 매달려있네.

동주 :감을 따먹을 사람이 없어서 그래.

 

찬바람이 쌩 불어오자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민수 :(몸을 웅크리며) 날씨도 쌀쌀해졌는데, 정말 이곳에서 혼자 지낼 수 있겠어.

동주 :(힘없이 입술만 살짝 올라가는 미소) 여기엔 우리 할머니가 계시잖아.

 

민수는 생뚱맞은 소리에 할 말이 없다.

동주는 과거 행복했던 시절을 회상하듯 눈을 감고 중얼거린다.

 

동주 :그때가 정말 좋았었는데.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민수 :과거란 그런 거잖아. 돌아갈 수가 없기 때문에 더욱 추억이 아름답게 남을 수가 있는 거잖아. 만약 우리들이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과연 추억이란 게 존재할 수가 있을까. 그래서 오늘을 즐겁게 보내야 하는 건데. 넌 일만하느라...

 

하늘은 꾸물꾸물 거리는 게 금방이라도 겨울비나 눈이 쏟아질 것만 갔다.

 

#99 방안. 아침

 

가스버너에 라면이 끓어져 있다.

 

민수 :라면을 먹어도 괜찮겠어. 읍내 나가서 삼계탕이라도 먹자.

동주 :난 괜찮아.

민수 :내가 좀 그래서 그러지.

 

흉가에서 라면을 먹는 두 사람 처량해 보인다.

 

#100 길가. 아침

 

작은 마을 입구로 거목이 있다. 거목에는 각각지천들이 걸려 있다.

신당으로 모시는 곳이다. 동주는 버거운 몸을 이끌고 걷고 있다.

거목 앞에 잠시 멈추어 선다.

 

동주 :(신기하듯) 아직도 여기에 신당이 남아있네.

 

#101 초등학교.

 

동주는 자신이 다녔던 초등학교 운동장을 거닐고 있다. 운동장편으로 천둥벌거숭이들처럼 초등학생들이 공을 갖고 뛰어다니고 있다. 매서운 날씨에도 아이들의 얼굴엔 추위를 느낄 수 없이 마냥 즐거워 보인다. 동주는 고목 밑에 있는 벤치로 다가가 앉는다. 아이들은 축구를 끝내고 수돗가로 달려가 마른 목을 축인다. 동주의 눈엔 뿌옇게 수돗가가 들어오는 가하더니 이내 아이들의 웅성거리던 소리가 사라진다. 그러면서 아이들의 모습도 같이 사라지면서 과거 자신들의 초등학교 모습이 들어온다.

 

인서트 과거 회상

어린동주는 수돗가에서 수돗물로 배를 채우고 있다.

옆으로 어린 가영이가 다가와 선다.

어린 가영의 손에는 도시락이 들려져 있다.

 

어린가영 :(수줍은 미소를 머금고) 동주야, 너 여기에 있었어.

어린동주 :(시큰둥) , ?

어린가영 :아니... 도시락을 먹어야 하는데, 배가 아파서.

어린동주 :배 아픈 거하고 나하고 뭔 상관이 있는데.

어린가영 :도시락을 남기고 가면 엄마가 걱정하시거든 그래서 도시락을 먹어야 하는데, (머뭇거리며) 그렇다고 엄마가 정성껏 싸주신 도시락을 쓰레기통에 버릴 수도 없잖아.

 

dissolve

아카시아나무 밑에 앉아 사이좋게 도시락을 나눠 먹는 어린 가영과 동주.

 

#102 개울가. 아침

 

동주는 개울가로 다가가 힘겹게 주저앉아 손을 개울가에 담그며 슬그머니 눈을 감으며 회상에 빠진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청명하고 파랑새처럼 재잘재잘 거리는 소리들이 오버랩으로 들려온다.

 

인서트 과거 여름

개울가엔 중학생들로 보이는 천둥벌거숭이의 소년들이 팬티 한 장만 입고 물장구를 치며 고기를 잡고 있다. 중학생들 틈으로 어린 동주도 보인다. 너무나도 즐거운 한 여름 개울가 위로 중학교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재잘거리면 지나가자 남학생들은 어린 가영을 발견하고 놀리기 시작한다.

 

아이들 :동주하고 가영이는 커어서 결혼한대요. 결혼한대요.

어린동주 :(부끄러워하며)그만해! 내가 왜 가영이하고 결혼하는데.

 

어린 가영은 얼굴이 시뻘게져 앞으로 도망치듯 뛰어간다. 어린 동주는 그런 어린 가영의 모습에 화가 났는지 약 올리던 친구 하나의 목을 팔로 감싸 안고 개울가에 나둥근다.

 

Dissolve

 

#103 샌드위치가게 앞. 해질 무렵

 

이른 저녁인대도 불구하고 동주의 가게 문은 셔터로 굳게 닫혀있다. 가영은 굳게 닫힌 셔터를 잡고 마구 흔들다가 힘없이 주저앉는다. 셔터 중간으로 점포임대란 글자가 크게 붙여져 있다.

 

가영 :(애절) 동주야.. 어디로 가버린 거니.. 정말 보고 싶어... 미칠 것만 같아.

 

어디선가 그런 가영을 지켜보고 있는 민석.

민석은 그런 가영의 모습에 애달프다.

 

#104 가옥 앞. 해질 무렵

 

동주는 저녁 느지막하게 집으로 돌아온다. 어수선했던 방안은 어느새 새롭게 단장을 끝내고 인부들은 철수하고 있다. 민수는 동주를 기다리고 있었다며 동주에게 다가가 선다.

 

민수 :어디 갔다가 이제야 오는 거야. 학교에서 한참을 찾았는데.

동주 :그냥 좀 걷고 싶어서 걸어봤어. 근데 방이..

민수 :급한 대로 네가 지낼 방만 도배하고 장판지만 깔아봤어.

동주 :쓸데없이. 이제 금방 떠날 건데.

민수 :들어가자.

 

두 사람은 방안으로 들어간다.

방안은 장판지며 벽지들을 모두 새것으로 깔아놓았다. 흉물스럽게 긴 전기선이 보이던 백열등도 형광등으로 말끔하게 바꾸었다.

 

#105 방안. 저녁

 

동주는 짐 가방을 풀어놓고 옥탑 방에서 갖고 온 제주도 관광지도를 꺼낸다.

 

민수 :(지도를 보며) 그건 왜?

동주 :잠잘 때마다 보던 거라서 그런지 잠잘 때 없으니까 허전해서.

민수 :(동주에게서 지도를 뺏으며) 내가 할게.

 

민수는 앉은뱅이책상에 올라가 천장에 지도를 붙인다.

 

#106 클럽.

 

만취한 가영은 스테이지로 휘청거리며 나간다. 가영은 발광하듯 춤을 추기 시작한다. 남자들은 그런 가영의 아름다운 몸놀림에 환호하며 열광한다. 가영의 눈에서는 즐거움이이란 단어는 찾을 수가 없다. 단지 슬픔과 괴로움에서 흘러나오는 눈물만이 하염없이 쏟아져 내린다. 귀퉁이에서 그런 가영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는 민석 애달프다.

 

#107 동주 방안.

 

앉은뱅이책상에는 십오 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남아있다. 책상귀퉁이로 이니셜로 가영의 K와 동주의 D를 가운데로 를 연필 칼로 정성껏 파낸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다. 동주는 책상의 이니셜 ‘KD' 어루만진다. 눈물 한 방울이 뚝 이니셜 위로 떨어진다. 민수는 도시로 돌아가 없다.

 

dissolve

화면이 바뀌며 동주는 이불속에 들어가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천장엔 제주도 관광지도가 붙여져 있다.

 

동주 :미안해 가영아.. 제주도 여행을 가자는 약속을 끝내 지킬 수가 없게 되었어.

 

뺨으로 뜨거운 눈물 한 줄기가 주르륵 흘러내리며 dissolve

 

화면이 바뀌면 동주 잠에 들어있다.

몸을 뒤척이다가 눈을 뜨고 주위를 살펴보지만 싸늘한 어둠만이 자신의 현재를 절실하게 다가온다. 왜 이리도 방안은 넓게만 느껴지는지 자신이 수년 동안 살았던 그 옥탑 방이 그리워진다. 발도 제대로 뻗지도 못했던 그런 허술하고 너무 작은 공간의 옥탑 방이었지만 그곳은 가영과의 같은 하늘아래 추억이 살아있기에 아늑하고 평온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이 누워있는 이 방은 그 방에 비해 두 배정도 넓은 공간인대도 불편하다. 동주는 이불에서 빠져나와 밖으로 나간다.

(사랑의 감정을 느낄 때 1인용침대도 너무나도 아늑하고 넓게 느낀다. 그러나 사랑의 감정이 사라지고 정만 남았을 때 더블침대도 작다. 정도 없을 경우에 대궐일지라도 그 공간에 함께 있다는 자체가 답답하게 만든다. 그렇듯 우리들의 지옥과 천국은 돈과 명예 권력이 아니라 마음에서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조금만 상대의 마음을 생각하고 배려할 때 최소한의 지옥은 사라지게 되는 법이다. 지금 지옥이라고 느낀다면 그것은 당신의 마음의 상처 때문이다. 혹은 누군가 마음의 상처를 줬기 때문이다.)

 

#108 툇마루/.

 

동주는 툇마루에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도심 하늘에서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별과 너무나도 맑게 보이는 보름달은 금방이라도 자신의 앞으로 똑 떨어질 것만 같이 다가왔다. 보름달을 보고 있으니, 가영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뼈에 사무쳐왔다.

 

동주 :달님! 달님! 저를 살려주시면 안 될까요. (애절)달님 제발.

 

달님은 그런 동주에게 대답이라도 하듯 달님은 먹구름 속으로 모습을 슬그머니 감추어버린다. 동주는 그런 달님이 자신의 말에 모습을 감추어버리자 순간 화가 났는지. 툇마루에서 내려와 마당에서 잔돌 하나를 주워 힘껏 달님에게 던진다. 돌은 조금 하늘위로 올라가는가하더니 그대로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동주의 현재 모습과 너무 흡사하여 안타깝다.

 

동주 :달님! 제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동주는 끝내 북받쳐와 뺨으로 눈물이 흘러내린다. 겨울 찬바람이 쌩하고 동주의 몸을 감싼다. 찬바람이 뼛속까지 스며들어오듯 온몸이 얼어붙는다. 동주는 추위에 몸을 감싸고 방안으로 돌아가 다시 이불속으로 드러눕는다. 그러나 단잠을 깬 동주는 더 이상 잠을 청할 수가 없다. 멀뚱히 눈을 뜨고 천장 붙은 제주도 관광지도를 보고 있으니, 눈가가 흐릿해지며 가영의 환하게 웃는 얼굴이 나타난다.

 

#109 가영의 방. 새벽녘

 

넋을 반 정도 놓고 창가에 걸터앉아 창밖 하늘을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다.

시커먼 하늘엔 달조차 보이지 않는다. 머리는 긴 생머리에서 짧은 단발로 바뀌었다.

 

#110 동주의 방. 새벽녘.

 

동주는 앉은뱅이책상에 앉아있다. 책상위에는 편지지들이며 볼펜 한 자루가 놓여있다. 책상 옆 귀퉁이론 쓰다 실패한 편지지들이 구깃구깃 구겨져 있다. 편지지엔 내 영혼보다 더 사랑하는 나의 천사 가영에게.란 글자가 적혀있다.

동주는 가영에게 마지막 편지 한 장을 남기기 위해 머리를 혹사하다보니 머릿속이 복잡해지면서 점점 머리가 깨질 듯 아파오는 통증을 느낀다. 한 번 찾아온 통증은 끝내 자신의 뇌종양으로 옮겨갔는지 쓰러지고 만다. 쓰러진 동주는 발작한다. 몸부림 살고자하는 진념이 강하면 강할수록 몸부림은 더욱 강렬해진다. 자신이 입고 있는 윗도리까지 갈기갈기 찍어버릴 정도다. 고통스러운 눈동자는 서서히 흰자로 변한다. 진통제를 찾아 주위를 돌아보다가 앉은뱅이책상서랍 안에 있는 것을 생각이 났는지 앉은뱅이책상서랍을 열고 진통제 알약 통을 꺼내고 마약성분 진통제 두 알을 꺼내 입안에 털어놓고 물주전자꼭지에다가 입을 대고 벌컥벌컥 들이붓는다. 진통제를 먹어도 진통은 여전히 가시지 않아 얼굴은 종잇장처럼 일그러져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은 그런 몸부림은 서서히 가라앉으며 흰자도 서서히 갈색 눈동자로 되돌아온다. 눈망울만 껌벅껌벅 거리며 들어오는 것은 천장에 붙여진 제주도 관광지도다. 광관지도 위로 동주 목소리 O. L.

 

동주e :살고 싶다. 그 누구보다 더 절실하게 살고 싶다. 내가 전생에 그 어떤 사악한 죄악을 저질렀기에 신은 내게 이런 고통을 주는 걸까?

 

동주 :(뼈에 깎는 고통에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쌍욕이 나온다) 젠장! 시팔...

 

동주e :신이 존재한다면 내겐 이러면 아 되는 것이 아닐까한다... 내가 얼마나 깨끗하게 살아왔는데...

 

서서히 고통이 진정되어 오듯 편안해지는 얼굴이 된다.

 

 

#111 가영의 방. 아침

 

창가로 소리 없이 하얀 함박눈이 일렁이고 있다.

가영은 침대에 누워 멍하니 창가를 바라보고 있다.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죽을 들고 엄마가 들어온다.

 

엄마 :(수심 가득한 얼굴로) 죽이라도 좀 먹자. .

가영 :(초점 없는 눈으로 엄마를 보며) 죄송해요.

엄마 :(그런 가영의 모습에 말을 잊지 못하고 눈물만) 정말...

 

#112 F.O/F. I 농촌 논두렁 길, 읍내 버스 정류장/

 

동주는 병마로 몰골이 사람의 몰골이 아니다. 앙상한 나뭇가지마냥 얼굴과 몸에 살이 없다.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있다.

동주는 버스정류장이 있는 읍내로 걸어가고 있다. 넓은 밭에는 풀 한포기도 보이지 않는다. 눈송이만 한 송이씩 휘날리는 삭막한 농촌 겨울 거리를 걷고 있다.

동주의 내레이션이 O. L.

 

동주e :저주받은 이 몸뚱이는 어느 정도 이를 악물고 참고 또 참아 견뎌낼 수가 있지만, 나의 천사 그녀를 보고 싶은 마음은 나로 하여금 2km나 되는 이 밭두렁을 지나 읍내까지 걸어오게끔 한다.

 

dissolve

화면이 바뀌면 읍내 버스 정류장

 

동주 :보고 싶다는 마음의 그리움은 그나마 남아있었던 이성마저 송두리째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더러운 벌레마냥 내 심장을 파먹어버린다. 이 더러운 그리움은 서울행 버스를 기다리게 한다.

 

서울행 버스가 정류장 안으로 들어온다.

 

#113 가영의 방.

 

창가로 소리 없이 하얀 함박눈이 펑펑 내린다.

가영은 침대에 누워있고 팔에는 링거바늘이 꽂혀있다.

O. L.

 

동주e :이 서울행 버스 위로 몸을 실으면 버스는 가영이가 있는 서울로 데려다 줄 것이다. 그럼 단걸음에 달려가고 싶다.

 

#114 F.O/F. I 읍내 버스 정류장/저녁

 

버스기사 :(동주를 보며) 이제 출발할 건데 서울로 가실 거면 얼른 타세요. 이게 서울행 막차니까요.

 

동주는 아무런 반응이 없자 버스기사는 출입문을 닫고 출발한다.

동주는 씁쓸하게 버스정류장에서 몸을 돌린다. O. L

 

동주e :오늘도 그녀에게 데려다 줄 서울행 버스 위로 몸을 실을 수가 없었다.

 

처량한 동주의 뒷모습. dissolve

 

#115 가영의 방.

 

창가로 소리 없이 하얀 함박눈이 펑펑 내린다.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민석이 들어온다.

가영은 많이 야위었다.

 

민석 :몸은 좀 어때?

 

가영은 넋 놓고 창가 밖만 물끄러미 볼 뿐 어떤 반응조차 없다.

 

민석 ;네가 싫다고 떠난 간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그만 잊어.

가영 :오빠, 미안해요. 혼자 있고 싶어요.

민석 :벌써 두 달째잖아. 너 이러다가 쓰러져.

가영 :이별이라도 했다면 좋겠어요.... (울컥하며) 그런데 제게 어떤 얘기도 없이 사라졌어요. 혹시, 엄마가 그 사람을 찾아가서... (뺨으로 눈물) 그 사람이 떠나버린 것일 수도 있어요.

민석 :그런 거 아냐.

 

가영은 창가에서 고개를 돌려 민석을 바라본다.

 

가영 :아니라뇨. 혹시 오빠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거라도 있어요.

민석 :(난감하다) 그게...

가영 :오빠, 아는 것이 있으면 얘기해주세요. (눈물과 애원) 제발요.

민석 :정말 그 사람을 잊지 못하겠어.

가영 :내게 아무런 얘기도 없이 떠나버린 사람, 그래서 잊으려고도 해봤어요. 그런데 그럴수록 내 머릿속에서 떠올라요. (자신의 심장에다가 손을 가져다대며) 이 심장에서 꿈틀거려요. 여기 이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이 느껴진다고요. 죽을 만큼 그 사람이 보고 싶어 미쳐버릴 것만 같아요. 이 마음속에서 그 사람이 떠나가지가 않아요.

민석 :(한 템포 쉬고).... 그 사람이 얘기하지 말라고 신신당부까지 했는데.

가영 :무슨 말씀이세요.

민석 :미안해.

가영 :(애원)오빠 제발요.

민석 :(난감하듯 한숨을 길게 내쉬고)그 사람 뇌종양말기라고 하더라.

가영 :오빠 지금 무슨 소리하시는 거예요.

민석 :지금 내가 하는 말이 거짓말이었으면 좋겠어. 그럼 너를 지켜보는 내 마음이 이렇게까지 고통스럽지가 않을 테니까.

가영 :(충격)설마.. 그럴 리가 없어요. 말도 안돼요.

 

민석은 가영에게 다가가 꼭 껴안는다.

가영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엉엉... 통곡한다.

 

 

다음이 마지막이네요.

이것을 나중에 소설로 각색해야겠네요.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풀어놓기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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