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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비의 소소한 창작이야기1-수학이야기-
단편 소설-허무(虛無) 본문
허무(虛無)
1
나는 고목아래다가 소주 한 잔을 따라놓고 고목에 등을 기대앉아 소주 한 잔을 마시고 하늘을 올려봤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너무나도 맑았다. 나의 친구들.. 그 녀석들은 영혼이 되어 저 맑은 하늘 2차원과 3차원사이 공간 어디선가 자신만의 판타지 꿈과 같은 공간에서 행복하게 잘 지낼 거라고 굳게 믿으며 나는 눈을 슬그머니 감는다.
2
우리 인간들은 어디서 왔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 왜 생명이란 자체가 만들어졌고 죽음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걸까? 왜 생명은 숲속에 아주 보잘것없는 이슬방울처럼 조용히 왔다가 사라지는 걸까? 우리 인간에게 죽음이 없었다면 현재 우리들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나는 죽음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그리고 언제나 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사실 그랬다. 죽음에 대해 생각을 했지 진지하게 고민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친구들의 죽음에서 깊은 고뇌에 빠져들었다. 우리는.... 왜 태어났을까?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걸까? 왜 죽어야만 하는 걸까? 죽어서 어디로 향하는 걸까란 의문을 깨달았다면 허무다. 비우다 허虛 없을 무無. 죽음에선 모든 것을 현실에 내려놓고 떠나야 한다. 부모자식관계 연인관계 친구관계 돈 명예 권력 티끌도 없이 모두 걸 비우고 떠나야 한다. 비우지 못하는 경우 추하게 변한다. 악착같이 어떻게든 좀 더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친다. 그러나 그럴수록 영혼이 추해진다. 죽음에서 유일하게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영혼이다. 깨끗한 영혼, 추한 영혼 이렇게 크게 두 종류로 나눠진다. 깨끗한 영혼에는 성실하게 열심히 살았던 삶, 희생과 봉사, 윤리도덕적인 삶 등등으로 나뉘며, 추한 삶에서도 가장 추한 삶 지옥에 떨어지는 삶은 전쟁, 테러, 살인, 강간, 강도, 자살, 폭력, 돈, 명예 권력욕 등 순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부와 권력욕에 언제나 실수를 하고 수많은 사람에게 영혼의 상처를 남긴다. 길어봐야 고작 수 십 년이란 짧고도 짧은 시간의 욕망욕정 등을 컨트롤하지 못한다. 그렇게 자신들의 영혼이 추해진다. 그렇게 죽음에 도달할 때 지옥행이나 지옥에 가까운 곳에 떨어진다. 현재만이 진실이라고 착각하고 사는데서 만들어지는 추한 우리네 내면인 영혼이다. 누군가가 이런 얘기했다. 사후는 불확실하다고 그렇기 때문에 현재가 진실이라고, 그렇다 현실은 절대 진실이다. 그러므로 절대 현재를 소홀하게 살아서는 안 되며, 절대 현재 시간을 포기해서도 안 되며, 절대 이 시간이 행복해야 한다. 그러나 운명의 굴레 역시 진실이다.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산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면 누가 자살을 하겠는가? 최선을 다했다고 해서 자신의 일이 순리대로 이루어진다면 누가 꿈을 포기하겠는가? 우리들의 삶은 왜곡되어있다. 죽음 역시 진실이다. 죽음은 2차원이라면 삶 현재는 3차원이다. 이것은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진실이다. 죽었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단 3차원에 있었던 모든 것이 사라질 뿐이다. 깨끗한 영혼과 추해진 영혼만이 남게 된다. 그렇게 무한의 시간 2차원 공간에서 추한 영혼만큼 어둠속에서 고통을 받게 된다. 깨끗한 영혼은 아름다운 밝은 햇살아래서 행복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죽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단안을 지울 수 있느냐구 물을 것이다. 3차원 공간 현실에서 태양이 없다고 가정해보자.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빛에 굴적이다. 빛이 사라지면 아문 것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빛에도 파장이 존재하며, 우리는 파장을 통해 감지하게 되면서 볼 수 있다. 만약 빛에 파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볼 수도 느낄 수도 없게 된다. 즉,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은 각각 파장에 영향이며, 이것은 뇌전자파 파동이다. 쉽게 생각하면 스마트폰 전자회로에 전자파동을 흘려보낼 때 스마트화면에 불이 들어오고, 다양한 영상과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뇌도 이와 같다. 뇌가 전자회로 역할 한다. 그런데 과연 우리 몸이 죽었다고 해서 뇌전자파동이 사라지는 걸까? 뇌전자파는 2차원과 같을 때 무한으로 쌓여도 부피는 제로가 되며, 2차원과 3차원 사이라고 할 때 제로보다 조금 클 뿐이다. 우리 뇌전자파가 응집될 때 영혼이 된다. 가끔 죽을 때 영혼 사진이 찍혔다는 얘기들이 종종 있다. 전자파동 응집현상이 우연하게 찍히는 현상이다. 우리 몸이 죽었다고 해서 뇌전자파가 완전히 소멸하는 것이 아니다. 2차원과 3차원 사이 공간, 판타지 공간, 판타지 애니메이션 같은 3차원 물리자체가 통하지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 하나의 꿈과 같은 공간이다. 꿈속이 대표적으로 3차원과 2차원 공간 사이로 볼 수 있다. 꿈속에서 무한으로 존재하더라도 부피는 현실에서 제로에 가깝다. 3차원과 달리 빛이 없는데 보고 느낄 수 있다. 단지 감촉이 없을 뿐이다. 이처럼 파장으로 보고 느낀다. 죽음 몸이 없다. 꿈 속 몸이 없다. 꿈속에선 우리들이 알고 있는 물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날아다니고, 폭포가 거꾸로 올라가고 괴물들도 나나타고, 아름다운 요정들도 나타나고 하나의 판타지다. 쉽게 생각하면 이렇다. 우리가 죽었다고 해서 파장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죽는 순간 파장은 인간의 몸에서 분리되며 이때 응집된 파장이 영혼이다. 꿈을 꾸는 것도 파장이다. 즉, 몸이 없다고 해서 느낄 수 없는 게 아니다. 꿈과 같은 형태로 느끼게 된다. 단, 감촉이 없을 뿐이다. 그렇듯 죽음은 자신만의 판타지 공간 꿈속공간과 같은 원리 공간이다. 하늘나비(jun-DK) 우주양면이론에선 영혼은 두 우주가 교차하는 꼭짓점으로 모이게 된다고 한다. 이때 뇌전자파 뇌파에 질량 0이므로 무한으로 쌓여도 사람의 눈으로 확인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그렇게 뇌파 영혼은 양면우주 교차점에서 존재하다가 다시 상대 반대편 우주공간으로 흘러가게 된다. 죄를 짓고 죄책감을 느끼게 될 때 심적 부담으로 악몽에 가까운 꿈을 꾸게 되듯 그렇게 지옥이 만들어지게 된다. 2차원과 3차원 공간 응집되었던 영혼이 잠시 머물게 되면서 지옥과 천국을 느끼게 된다. 불지옥일지라도 감촉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이 악몽을 꿀 때 느낌과 같다. 강한 믿음에서 기적이 나오는 힘도 이런 원리 때문이라고 한다. 몸이 없을 때 감촉이 없을 뿐, 그 외엔 모든 것을 느낀다는 것이다. 죽음을 뛰어넘는 공간 영혼의 공간은 정신적 공간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3
그날은 유난히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침대에 누워 뒤척이다가 새벽녘쯤에 겨우 잠이 들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초인종소리가 우렁차게 울러댔다. 나는 겨우 잠이 든 상태에서 어떻게든 잠에서 깨지 않으려고 베개를 귀에다가 틀어막았다. 그러나 초인종소리는 모기 한 마리가 귀전에서 앵앵거리듯 머릿속을 울려댔다. 나는 초인종소리에 강제적으로 눈을 뜨게 되었고, 침대 옆 전자시계를 봤다. 1,20 분이라고 생각했던 시간은 벌써 2시간이 지나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빼내고 현관으로 나와 인터폰을 터치했다.
“누구세요.”
인터폰 화면으로 사람 모습이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순간 짜증이 났다.
“어떤 놈이 장난질치고 지랄이야. 젠장.....”
나는 투덜대며 몸을 돌려 부엌으로 향하는데 다시 초인종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약이 바짝 올랐다. 몸을 돌려 성큼성큼 씩씩대며 현관으로 향했다.
“어떤 새끼야, 도대체 어떤 새끼가 장난질이야...”
나는 현관문을 거칠게 열었다. 현관 옆으로 한 남자가 힘없이 쭈그려 앉아있었다. 그는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반응하듯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친구였다.
“어, 미안....”
친구가 입을 열자 술 냄새가 내 코끝을 자극시켜왔다. 친구의 모습에서 강한 고독이 묻어있었다. 나는 그런 친구의 모습에서 강하게 느껴왔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친구를 바라봤다. 친구는 취해 몸을 쉽게 일으키지 못하였고, 나는 그런 친구의 팔을 잡고 일으켰다.
“자네하고 술 한 잔이 생각이 나더라고 그래서 찾아왔어.”
친구는 술에 취해 있었지만 정신은 맑은 듯 또박또박 얘기했다. 나는 감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나는 친구에게 어떤 물음도 없이 친구를 부추여 현관으로 들어갔다.
4
마흔 중후반 혼자 사는 남자의 냉장고 안이란 그렇듯 술이 냉장고 한 편을 가득 채워져 있다. 소주 한 병을 꺼내 식탁위에 올려놓고, 김치와 목살을 꺼내 김치찌개를 끓었다. 친구는 묵묵히 식탁에 앉아 자신의 잔에다가 술을 따르고 마셨다.
“번거롭게 안주까지 만드는 거야. 그냥 대충 한 잔하면 되는데.”
“그래도 다음날 속이 덜 쓰리려면 따뜻한 국물이 있어야지.”
친구는 대꾸대신 자신의 잔에다가 소주를 따르고 들이켰다.
“잠깐만 기다려 소시지라도 구워줄 테니까.”
나는 프라이팬에다가 소시지를 살짝 달구고 식탁으로 가져다놓고, 맞은편 자리로 앉자 친구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내 앞에 놓인 술잔에다가 술을 따랐다. 나는 반잔을 마시고 친구의 눈을 쳐다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무슨 일이라니? 그냥 자네가 보고 싶어서 온 거야.”
“아니, 술에 취해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오랜만이라서 그렇지.”
“살다보면 가끔 취하고 싶을 때가 있잖아.”
“하긴 그렇기는 하지.”
“그런데 오늘은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가 않네.”
그렇게 친구와 나는 술잔을 비웠다.
“안주 좀 먹어. 속 버려.”
친구는 속이 버린다는 말에 헛웃음을 지었다.
“속이 좀 버리면 어때. 우리 삶이 백년 만년 사는 것도 아닌데.”
나는 친구의 부정적인 답변에 살짝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친구는 나의 권유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소시지를 하나 들고 반입 잘라 물었다. 그렇게 다시 침묵 속에 우리는 소주잔을 비웠다. 그리고 친구는 취기에 턱을 괴고 눈을 반쯤 감긴 체 생뚱맞은 얘기를 하였다. 술에 취하면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달리 주절주절 거리게 된다. 주제도 없고, 내용도 수시로 바뀐다. 그냥 무의식속에서 얘기한다. 그리고 반복하는 사람들도 많다. 또한, 자신의 불만을 털어놓는 사람도 많다. 그처럼 술에 취한 사람들은 정확한 주제를 놓고 토론하기보다 자기주장을 한다. 그렇게 그 주장에서 언제나 자신이 옳다며 싸움이 일어나게 된다. 그런 이유는 뇌에 파동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파동을 흩뜨려 놓기 때문이다. 그래서 술에 취하면 순했던 사람이 폭력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술에 취하면 용감해지는 것이 아니라 무모해진다. 그래서 언제나 술을 마시고 난 뒤에 인간들은 후회한다.
“내겐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더라구. 결혼이라도 했다면 그 사람과 얘기라도 할 텐데...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에선 결혼 자체가 과소비처럼 변해버렸잖아.” 친구는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얘기했다.
“하긴 그렇지. 그래서 삼포시대가 나온 거잖아. 돈이 없으면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게 아니니까.”
“일등주의 학벌주의 사상은 썩은 교육에서 만들어졌어. 일등주의를 주입하는 부모와 선생들에게서 학생들이 무엇을 보고 배우겠어. 오로지 성공만을 위해 명문대를 위한 공부, 시험제도 시스템... 학우끼리 서로 경쟁하게 만드는 시험제도... 그래서 학창시절 학우는 있지만 친구가 없잖아. 상대방이 경쟁자이니까. 그런데 말이야... 사실 시험제도는 말이야. 성적을 체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야... 학생들이 많이 틀린 문제를 기준으로 체크하고 통계해서 방학 때 그 부분을 보충수업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거야. 그런데 이것을 선생과 교육계는 몰라. 그래서 오로지 성적을 먹이고 줄을 세우는 거야. 공부 잘하는 부류, 공부 못하는 부류로 그렇게 공부 못하는 학생들은 심리적으로 자신감이 무너지면서 공부하는 걸 포기하게 되는 거야. 그렇게 어린 학생들 인생을 망치는 곳이 바로 썩은 교육시스템 일등주의 학교야. 사실 그렇잖아. 공부를 못하면 대통령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잖아. 사업가 대기업에 들어가지 말라는 법도 없잖아... 미래는 말이야. 공부, 암기세대는 사라질 거야. AR스마트기기가 나올 테니까. 그런데 교육은 사회의 발전을 전혀 따라가지 못한다는 거야.”
“하긴 그래.” 나는 맞장구를 치듯 대답했다.
“그런데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 과연 돈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걸까란.” 친구는 술기 때문인지 생뚱맞게 대화내용을 자주 바꾸었다.
“편리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아닐까?”
“그렇지. 편리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거겠지. 그런데 과연 돈이 우리들 사회를 편리하게 만들고 있기는 한 걸까. 돈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고, 돈 때문에 결혼을 포기해야 하고, 돈 때문에 공부를 포기해야하는데, 오히려 돈이 존재하기 때문에 현재 사회가 지옥이 되는 게 아닐까?”
“하긴...” 나는 친구 말에 옳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런 얘기가 있잖아. 천 년 전 지배자가 국가를 지배하기 위해서 만들었다는 얘기가. 돈을 사용해서 권력을 다지는 목적으로.”
“하긴 그래, 돈이란 무기가 없다면 현재 권력자들은 권력을 잡지 못할 테니까. 경제란 이름으로 포장해놓고.”
“정치권을 보면 확실하지. 그들은 정치자금이라며 모금을 하는데 그들이 하는 일을 보면 그렇잖아. 정말 국민을 위해 헌신적으로 양심적으로 일하는 소수 정치가들도 있기는 하지만...”
“하긴... 그들이 뭐하는지 모르긴 해. 툭하며 두 파로 나눠 싸우고 국회 문은 수도 없이 닫으니까.”
“그처럼 그들 권력자들은 돈을 신봉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그러는 거야. 특히 우리나라 대통령을 봐봐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깨끗하게 대통령자리에서 물러난 사람이 없잖아.”
“하긴, 권력에 빈대처럼 달라붙은 측근들... 언제쯤이며 이 사회가 깨끗해지려는지.”
“우리가 죽어서 다시 태어나야 하지 않을까?”
나는 우스갯소리로 툭 던졌다. 그러나 친구는 심각한 표정으로 “죽음...”하고, 죽음을 되새겼다. 그리고 씁쓸하듯 미소를 짓고 얘기를 계속이었다.
“그런데 진보와 보수는 원래 존재하지 않아. 국민이라면 누구나 같으니까. 국가가 제대로 행복하게 잘 돌아기기를 원하니까. 그런데 정치가들은 자신들의 목적 권력을 위해 보수진보 이렇게 나누고 국민을 둘로 나눠서 싸움을 붙이고 있어. 그게 과연 국가적으로 어떤 이득이 있는 걸까. 그렇게 사람들을 현혹시키기 위해 거짓정보 거짓뉴스를 만들어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뿐이잖아.”
“그래야 표를 구걸할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무능한 국민들을 현혹시켜야 서로 적대하게 될 테고, 적대하게 된 만큼 표는 나뉘게 될 테니까?” 나는 대답했다.
가스렌즈에 김치찌개는 보글보글 거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스렌즈로 가서 가스밸브를 잠그고 김치찌개를 들고 탁자위에 올려놓았다.
“쉰 김치로 만들었어. 국물 먹어봐 속이 시원하게 풀릴 거야.”
5
“이제 그만 머리 아픈 얘기는 그만하고 술이나 마시자.”
친구는 술잔을 들어 앞으로 내밀었다. 나는 친구의 술잔에 나의 술잔을 가져다대고 짠하고 단 숨에 들이켰다. 그리고 잠시 말없이 술잔을 비웠다. 그러던 중 친구는 힘겹게 다시 말문을 열었다.
“자네는 나처럼 살지 말게.”
“자네처럼 살지 말라니? 자네는 이 사회에서 성공한 부류에 들잖아. 맨 몸으로 100억대 부동산을 만들었으니까.”
“그게 아무런 소용이 없네.”
친구는 알 수 없는 헛웃음을 지었다.
“....?”
“그렇잖아. 죽음 앞에서 백억 대 천억 대 재산이 있다고 해서 가져갈 수도 없잖아. 대통령, 독재자일지라도 죽음 앞에선 아문 것도 가지고 갈 수 없잖아.”
“자네답지 않게 무슨 소리야.”
“그렇잖아. 우리들이 죽을 때 어떤 것도 가지고 갈 수 없잖아. 그런데 우리들은 왜 그렇게 악악거리며 돈을 신봉하고 권력을 신봉하면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
“자네 혹시 중년에 찾아온다는 갱년기야.”
“갱년기라니? 그건 여자들에게나 찾아오는 거잖아.”
“드물게 남자에게도 사춘기처럼 중년에 찾아오기도 한다고 해. 사회에 대한 불신 그리고 자신에 삶에 대한 불신 그렇게 우울한 감정에 사로잡힌다고 해. 왜 나는 이렇게 살고 있는 걸까하는 특히 우리들처럼 결혼하지 않고 홀로 살아가는 사십대 중후반에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라구.”
“그럴지도 모르겠군. 가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이 하나의 거짓된 허상이란 생각이 들 때가 있으니까.”
“허상이라니?”
“그렇잖아. 죽음 앞에서 깊이 생각해볼 때 가족 형제 친구 모든 것은 죽음과 동시에 허상에 지나지 않잖아. 그리고 다음 생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그곳에선 똑같은 나라, 똑같은 가족 친구가 존재할까? 오히려 역으로 변하지 않을까? 부자였던 사람은 가난해지고, 적대시 했던 국가의 국민이 될 수도 있잖아. 그러면서 우리는 가난한 사람을 외면하고, 자신보다 잘 나가는 사람들을 질투하잖아.”
“죽음에 대해선 그 누구도 명확한 답을 내놓을 수 없으니까. 그렇지만 현재가 진실이지 않을까. 그러므로 열심히 살아가면서 그곳에서 작은 행복감을 찾아가는 게 인생이 아닐까. 그리고 죽음은 죽은 뒤에 생각해도 늦지 않을 테고...”
“우리처럼 현재만 보고 현실만 보기 때문에 지구 인류는 불 공편해지는 거야. 배부른 돼지처럼 언제나 자신의 배를 채우면서 남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이유가 현재 현실만 보고 살아가는 데서 존재하지 않을까? 사후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은데서 말이야.”
“그렇지만 인생에서 답이 없잖아. 현실을 기준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찌 보면 정답이 아닐까. 대부분 인류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구.”
“그렇지만 죽음은 현실이야. 그리고 죽은 뒤에 사후란 것이 존재할 가능성도 매우 높아. 그런데. 사후에 역으로 바뀔 수도 있어. 하늘나비(jun-DK)의 양면우주 이론을 보면 점구가 팽창하면서 구는 원기둥 두 개의 깔때기 모양으로 팽창이 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두 개의 깔때기 형태 공간 중 하나라고 해. 양면 우주란 점에서 상하가 바뀐다는 거야. 그것은 현재 우리들의 삶이 정반대로 바뀔 가능성이 높아. 만약 살인자는 살해당한 사람에게 살해당하게 되고, 또, 현재 선진국 국민들은 빈국 국민이 된다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빈국과 빈곤을 없애는 게 다음 생을 위해 주요하다는 거야. 나중에 시간이 나면 無天地의 기하학정리2 이론 정리편 양면우주이론을 읽어보게.”
우리는 이런 논점도 명확하지도 않지만 다양한 얘기를 안주삼아 술을 마시다가 나는 어느 지점에서 필름이 끊겼고, 다음 날 눈을 떴을 때 소파에 잠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친구는 간곳이 없었다. 그렇게 보름이 지날 무렵에 그림엽서 한 장이 내 집으로 날아들어 왔다. 그림엽서에는 성산일출봉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엽서를 뒤집어 엽서를 읽었다.
‘우리는 사회에서 인정받고 재산을 많이 모으면 모을수록 성공한 삶, 행복한 삶이라고 착각하고 살았지. 그런데 그것은 하나의 거짓된 정보로 만들어진 인간의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 자연을 보면서 새삼 깨달았네. 자네도 지금 밖을 나가서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게나. 우리들이 얼마나 거짓된 정보에 세뇌되고 있는지를.’
나는 엽서를 읽고 난후 알 수 없는 묘한 잡념에 잠겨들었다. 파란하늘, 그러고 보니 요새 파란하늘을 본 기억이 없었다. 오로지 돈을 위해 성공이란 이름아래 일만했다. 그것만이 진실이라고 세뇌되어있었다. 오죽하면 초등학생들의 꿈이 부자가 되는 거라고 할까? 그만큼 현재 우리들이 배우는 학습교육은 어떤 작은 사상도 없는 썩은 교육이다. 그런 썩은 교육에서 꿈을 꾼다는 자체가 오히려 이상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꿈 자체가 악마의 학 경제학에 세뇌되었다. 그래서인지 성인들도 자신들이 왜 부 명예 권력에 신봉하는지조차 모른다. 대통령에게 물어봐라. 죽으면 가지고 갈 수 없는 명예와 권력에 왜 그렇게 집착했는지 명확하게 답을 내놓지 못할 것이다. 이게 현실이다. 유년시절부터 무의식속에 경제학 기초를 세뇌되어왔던 것이다. 그게 정답이라고, 이상과 사상이 사라진 이유는 학과교육 암기교육 대입시험을 위한 오로지 학습교육에 영향이다. 경제학에 의해 우리는 세뇌 당했고, 그렇게 현재 우리들은 이상적인 꿈을 꾸지 못하게 된 원인이다. 오로지 현실적 물질만능에 목표를 세울 뿐이다. 나는 이런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기위해 뒤뜰로 향했다. 나는 고목 밑 나무의자에 앉아 독서하는 것을 즐겼다. 이상하게 고목 밑에 있으면 마음이 안정되었다. 무더운 여름철 가끔 고목에서 뿜어내는 차디찬 나무숨이 무더위로 지친 몸을 식혀줄 때 행복감마저 느꼈다. 그렇게 고목 밑 그늘에서 가끔 낮잠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참새의 노랫소리에 눈을 뜨곤 했다. 참새 한 쌍은 언제나 그렇듯 뭐가 그리도 행복한지 재잘재잘 노래를 불려주곤 했다. 나는 가끔 문득 참새를 보면서 느꼈다. 인간은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그래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단순하게 생각할 때 행복은 더욱 많이 찾아온다는 진리에서 보면 바보들이 행복하다. 현재 우리들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남과 비교하는 시점에서 시작된다. 금수저 흙수저를 만들어놓은 시점에서 자신들은 흙수저란 생각을 지배하게 되면서 불행해진다. 그러나 바보들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 오늘 하루를 최선을 다하고 즐길 뿐이다. 지금 내 눈 앞에 재잘재잘 거리는 참새들처럼. 만약 참새들이 많은 생각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참새들은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다. 참새들은 모두 자살해버릴 테니까. 행복을 추구하고자 할 때 바보가 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다. 도심에서 불행하다고 생각 들면 농촌으로 향하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다. 주변에 비교할 상대가 없을 때 무기력함을 덜 느끼게 되며, 그 만큼 행복하게 살 수 있다. 화려한 도심에서 생존하는 것은 화려한 레온 사인 밑으로 짙은 화장이란 가면이 필요하다. 행복이란 그런 것이다. 부와 명예 권력은 어떤 연관성도 없다. 단지 자신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행복과 불행이 나뉜다.
6
어느덧 한 달이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친구가 응급실로 실려 왔다는 긴급전화였다. 나는 응급실로 실려 왔다는 말에 부리나케 외출복으로 갈아입다보니 상의가 뒤집힌 것을 몰랐다. 길가에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며 자기들끼리 히죽였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느낄 수 없었다. 가족형제보다 더 가족 같았던 친구가 응급실로 실려 왔다는 소리는 청청날벼락이었기에. 우역곡절 끝에 친구가 실려 온 응급실로 도착했다. 친구는 응급실 구석 편에 산소마스크까지 착용한 채 곤히 잠들어있었다. 담당의는 내게로 다가와 간단하게 몇 가지를 물어왔다. 가족이냐, 가족이 없느냐 등등. 담당의는 가족이 없다는 말에 내가 보호자라고 생각하고, 친구가 처해있는 상황을 설명했다. 이제 살아봐야 일주일정도 밖에 남아있지 않다는 뜬금없는 얘기였다. 믿을 수가 없다며 의사에게 몇 번이곤 재차확인 했다. 의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만 끄덕이며 똑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의사의 말을 받아들이는 순간 숨이 턱턱 막혀오면서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왔다.
친구는 유년시절 부모를 일찍 고통사고로 여의고 언제나 혼자 외롭고 배고픔에서 성공만이 자신의 살길이라며 열심히 살아왔다. 그렇게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왔다. ‘이런 젠장, 열심히 산 내 친구가 왜 이렇게 죽어야만 하는 거야. 사회에서 쓰레기 벌레들만도 못한 사람들도 잘 먹고 잘사는데. 왜 하필이면 내 친구란 말인가?’ 이런저런 생각에 내 눈물샘이 고장이라도 났는지 눈물을 참으려고 해봤지만 눈물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나는 화장실로 향했다. 좌변기에 앉아 두 손을 모아 신에게 기도했다. ‘신이 정녕 존재한다면 뭐라고 대답 좀 해주세요. 제발... 신이시여. 왜 내 친구가 죽어야 하는 것입니까.’ 그러나 신은 어떤 작은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나는 화장실을 나와 세면대로 향했다. 세면대에 달린 수도꼭지를 틀고 천천히 거울을 올려다봤다.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몰골... 눈물로 범벅되어 눈이 퉁퉁 부어올라있어 몰골이 추했다. 옷도 뒤집혀 있었다. 나는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에 이유 없이 화가 솟아올랐다. 손바닥으로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향해 내려쳤다. ‘신이시여. 저는 신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신이 우리를 지켜주신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두 명의 내 친구 모두 이렇게 데려가십니까. 제가 전생에 어떤 죄를 지었기에...’
7
화장실을 나와 응급실로 되돌아왔을 때엔 친구는 정신이 들어왔는지 인공호흡기를 떼고 있었다. 친구는 나를 보더니 어색하듯 힘겹게 미소를 지었다.
“미안, 괜히 나 때문에 심려를 끼치게 됐네.”
친구는 모든 것을 받아드리고 있었다. 죽음이란 참으로 살아가야할 사람들에게 고통스럽게 다가오는 아픔이다. 그러나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한번쯤 찾아오는 것이기에. 친구는 단지 남들보다 좀 더 일찍 찾아온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마음을 달랬다. 그러나 친구 앞에서 이런 생각자체가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자네는 정말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거야. 신이 정녕 존재한다면 이렇게 자네를 내게서 이렇게 빨리 데려가서는 안 되는 거 아냐.”
“신이 존재하니까. 이렇게 부르는 게 아닐까. 이 지옥 같은 이런 삶에서.”
그랬다. 삶은 지옥이었다. 내겐 둘도 없는 친구 한 명이 더 있었다. 그 친구는 어릴 때 아버지가 바람을 피워 낳은 사생아였다. 그렇게 그 친구는 태어나면서 자신의 어머니에게 버림을 받았고, 계모와 이복형제와 살았다. 그 친구는 열 살부터 죽는 순간까지 계모란 사람의 일을 도왔고 일당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노동 착취당했다. 그렇게 번 돈을 계모는 자신의 자식들에게 나눠줬다. 나는 보다 못해 왜 그렇게 사느냐며, 독립하는 게 어떠냐구 물었다. 그러자 그 친구의 얘기가 가관이었다. ‘전생에 죄가 커서 그럴 거야. 그리고 이 지옥을 이겨내야 천국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신은 인간들에게 시험을 내린다고 하잖아. 신의 테스트가 마지막에 가까울수록 고통이 커진다고 하잖아. 그 고통을 이겨내야 천국으로 향할 수 있다고 하잖아.’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신.... 죽음.... 정말 아이러니했다. 그러고 보니 하늘나비(jun-DK)사상을 보면 이런 글이 있었다. 신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이며, 내가 죽으면 신도 같이 사라진다. 그러므로 자신을 강하게 믿을 때 진정한 신이 나타난다고, 나는 처음 읽을 때 이 얘기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고독을 느끼며 살아가다보니 어느 순간 이해할 수 있었다. 신이란 자기 자신이며, 자신의 강한 마음이 신이란 것을. 생각을 해보라, 나약한 마음에 언제나 불안하고 우울한 법이다. 이런 나약한 생각 마음에서 현재 지옥을 만들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강한 마음 자신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모든 물체를 사랑할 때 마음이 안정되고 행복하다는 것을. 그랬다 신은 찾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이며, 신은 인간(신도)을 통해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 믿는 것이다. 언제나 몸뚱이를 지닌 신도들을 통해 종교를 접할 때 사건사고가 일어난다. 종교지도자도 한 명의 인간의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처럼 신을 믿는다면 몸뚱이가 있는 것을 믿지 말고, 정신적 지주 직접 신을 믿어야 한다. 언제나 대부분 몸뚱이가 있는 사람, 경제학에 노출된 사람, 돈을 신봉한눈 사람들은 언제나 추했다. 그의 이복형제들도 그랬다. 현 사회를 차분히 살펴보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경제이론에 우리들의 삶과 사상이 진흙 속에 묻혀버리고 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 친구를 생각하면 숨이 턱턱 막혀왔다. 조금만 신경 쓰고 살폈다면 하고, 이복형제들도 경제학에 빠져 돈을 신봉하는 자들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이복동생인 친구가 반강제노역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주변사람들도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자신의 일이 아니란 점에서... 이게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썩은 사회였다. 그리고 노모가 늙어 일하지 못하게 되자 이복누나란 사람은 그 친구에게 집을 나가라는 듯 말을 했다고 한다. 계모란 사람은 자신이 낳은 아들에게 모든 것을 내줬다. 그런데 그 아들과 그 며느리는 모든 것을 원하듯 했다. 그렇게 자신의 어머니의 생일날에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딸은 아들에게 현금이 더 이상 넘어가지 못하도록 관리란 이름으로 통장을 챙겼다. 현대인 대부분들은 악마의 경제학에 빠져 돈 앞에선 양심이 존재하지 않았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경제가 발전할수록 현대인들은 돈을 신봉하게 되었고, 물질만능주의에 빠졌다. 그렇게 나온 흙수저 금수저 갑질문화다. 그런 그들에게는 자신의 노부모가 밥한 끼를 제대로 챙겨먹는지 관심조차 없다. 오로지 자신들의 가족만을 챙기느라 여념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이게 모든 현대인들의 진실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내가 의식하는 단면적인 것이라고... 사회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며, 수많은 성격과 수많은 가정교육이 존재한다. 그래서 자신이 낳은 아이를 죽을 때까지 폭행하는 부모도 있는 반면, 자신의 자식을 너무나도 끔찍하게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는 부모도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내줄 때, 더 내놓으라고 노부모를 폭행하기까지 한다. 이기주의가 뿌리를 내리게 되는 원리는 부모의 잘 못된 교육 사랑이란 믿는데서 시작되며, 작은 사회 학교에서 오로지 성적만을 위해 돌아가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랬다. 내가 학교 다닐 때 학비를 내지 못하면 선생은 학생들에게 폭행을 저질렀다. 어떤 죄의식도 없이 선생들은 학비를 가지고 오지 않으면 학교에 오지 말라는 말을 서슴지 않게 했으며, 어린 학생들에게 어떤 작은 인권도 주지도 않았다. 그렇게 선생들은 학비를 내지 못한 아이들에게 각가지 창피를 줬다. 교무실 앞에 학비를 못 냈습니다란 글자를 들고 무릎을 꿇어앉게 했다. 이 친구는 학비를 자주 내지 못했고, 그렇게 자주 교실에서 폭력을 당했고, 교무실로 자주 끓여갔다. 지금에 와서 알게 된 것이지만 담임은 교장에게 교장은 이사장에게, 이게 경제학, 경제 돈을 최우선시 생각하는데서 만들어진 세뇌다.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그릇된 생각 그런 생각을 지배하는 선생들에게서 무엇을 배우겠는가? 그렇게 그 친구는 고등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 친구는 경제학이 만들어낸 희생양이었다. 그렇게 그 친구는 미운오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 자신과 다르다고 편견과 배제를 당했던 오리는 이후 백조가 된다는 뜻을 품고 있다. 그랬던 그 친구는 자신의 고통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마흔이 오기 전 자살을 선택했다. 그때 좀 더 살피고 좀 더 챙겼다면 그 친구의 마지막 선택을 막을 수도 있었다는 그런 죄책감 때문에 지금도 나를 너무나도 힘들게 만들었다. 자살은 그 친구에게 있어 자신을 위한 최소한의 출구였다. 그 친구가 자살하기 이틀 전 우리는 술을 마셨다. 인간답게 사는 방법은 죽는 게 아닐까란 말을 했다. 우리는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자살을 뒤부터 읽을 때 살자란 것을 그처럼 그 친구는 인간답계 살고 싶었던 것이다. 절실하게 살고 싶기 때문에 죽음을 선택하고 다음 생을 원했던 것이었다. 사실 그랬다. 사후란 미지의 세계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고통스러운 삶을 포기할 일이 없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반대로 생각하는 경향이 높다. 단순하게 사는 것이 힘들어서 자살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정말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강한 마음이란 사실을 모른다. 자살을 시도하기 전까지 수많은 생각과 시간이 지난다는 것을 모른다. 순간, 살기가 힘들어서 죽어야지 해서 자살하는 사람들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살을 시도하고 성공할 경우, 그 주변사람들은 그 고통에서 한 동안 고통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최대한 주변사람과 정을 주지 않으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자신 때문에 고통 받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친했던 사람과 연락을 끊는다. 그처럼 그들은 정말 순수한 마음을 지닌 자들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검은 색이 쉽게 덧칠해지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아닌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내 친구를 위해서... 그래야 그 친구는 천국으로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번엔 이 친구마저 신은 데리고 가려고 한다. 이게 내게 내린 시련 신의 테스트인가란 생각마저 들어왔다.
8
내겐 이 친구 둘 외에는 사람을 사귀지 못했던 이유가 있었다. 중학교시절 심하게 왕따를 당했었다. 반 학우들은 그런 나를 외면했다. 아니 선생님들도 알면서 모르는 척했다. 어떤 선생은 나에게 이런 말까지 했었다. 야욕강식이라고 했다. 사회에선 약하면 먹힌다며 내가 약해서 당하는 거라며, 원망할 거라면 나약한 자기자신을 원망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선생을 반대로 읽으면 생선이 되는 거라고 친구는 나에게 위로 했다. 그렇게 나는 한 때 자살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또 고민했었다. 그런 나를 위해 유년시절부터 절친이었던 이 두 친구는 다른 반인데도 불구하고 나를 위해 헌신적으로 그들과 싸웠다. 그렇게 중학교시절을 무사하게 끝낼 수 있었다. 그리고 학창시절 왕따 후유증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사람이 두려워 사람을 사귀는 것이 서툴렀다. 그처럼 이 두 친구는 나에게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신은 나에게 이 두 친구를 데리고 간다. 젠장!!! 진정 신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지가 궁금했다. 아니 이게 내게 내린 신의 테스트가 확실하다고 느껴졌다. 고통, 고뇌, 아픔... 지옥.... 그처럼 죽음이란 그랬다. 죽은 사람은 그걸로 이 세상과 안녕을 고하지만 살아있는 사람은 그 사람의 그리움에 지옥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더욱 사람을 사귀는 것에 서툰 것인지도 몰랐다. 이별의 아픔이 두려워 여자와 사귀는 것을 포기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 나이가 되도록 단 한 명의 여자와 사귀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후회하지 않는다. 내겐 절친 두 명이 있었기에... 젠장!!
9
친구는 내게 피해를 주기 싫다며 병원에서 죽음을 맞겠다고 하였다. 나는 친구가 차가운 병동에서 마지막 생을 마감하는 게 싫어 강제로 퇴원수속을 밟아 강제로 내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렇게 지금 우리는 바람을 쐬기 위해 뒤뜰에 나와 있다. 뒤뜰엔 작은 화단이 있어 언제나 곤충들이 그 화단에서 놀았다. 꽃엔 나비 한 마리가 앉아 꽃 그네를 타고 있었다. 친구는 꽃 그네를 타고 있는 나비를 보더니 방그레 웃었다. 친구가 나비를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아 휠체어를 화단으로 밀자 친구는 손을 들어 저지했다.
“그냥 여기 멈춰주게.”
“나비를 보고 싶었던 게 아니었어.”
“저렇게 행복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나로 하여금 휴식을 깨버리고 싶지가 않아.”
친구는 무상무색이란 단어를 깨우친 사람마냥 너그럽게 입을 열었다. 나는 할 수 없이 휠체어를 멈추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나비가 날아오를 때까지 말없이 나비를 바라봐야했다. 나비는 바람이 불어오자 사르르 날갯짓하더니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친구는 나비를 따라 시선이 움직였다.
“다시 태어난다면 나비로 태어나고 싶군.”
초가울이라서인지 낮 햇살은 무더운 느낌이 들어왔다. 휠체어를 밀어 고목이 있는 그늘 아래로 움직였다. 고목으로 향하는데 친구는 손을 들어 멈추라고 했다. 나는 의아스럽다는 듯 휠체어를 멈추고 친구에게 왜 그래하고 물었다.
“개미가 지나가고 있어. 우리 이 개미가 지나간 뒤에 가세.”
친구의 예전 좌우명은 경쟁사회란 폭탄과 총알이 쉴 새 없이 날아오는 전쟁터보다 더 위험하다였다. 친구에게선 조그마한 틈새도 없었고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만 같은 얼음인간이었다. 그런 친구가 죽음 앞에서 감성적으로 변해있었다.
“아무리 보잘것없이 보이는 개미일지라도 생명이 있어. 그리고 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지. 그런데 개미들이 너무 불쌍해.” 친구가 얘기했다.
“불쌍하다니?”
“일개미들은 죽는 그 순간까지 일만하다가 가잖아.”
친구는 자신의 현재 일개미와 같다는 생각하고 있었다. 개미가 지나가자 다시 휠체어를 밀어 고목아래 그늘 진 곳으로 가서 멈추었다. 친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힘겹게 얘기했다.
“내가 모아둔 재산을 자네에게 넘기고 싶은데 자네 생각은 어때?”
‘나는 그러면 좋지.’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그러나 좋다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목숨과 바꾸어 일구어낸 재산이었기에.
“나는 싫네.”
친구는 내 대답에 의아스럽다며 나를 쳐다봤다.
“싫다니. 왜?”
“자네가 어떻게 모은 재산인지. 내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데 그걸 어떻게 받을 수가 있겠어.”
“내겐 물러줄 가족도 없어. 그리고 현실적으로 자네와 난 형제와 매한가지잖아.”
“생각을 조그만 바꿔보면 어떨까?”
“생각을 바꾸다니?”
“자네처럼 부모님을 일찍 여윈 불우학생들을 위해 쓰는 것이 좋을 듯해. 그럼 자네처럼 힘들게 공부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어. 그렇잖아 중학교시절 생각 않나. 학비를 내지 못한다고 얼마나 수모를 당하고 폭행을 당했는지 말이야.”
친구는 잠시 고민했다.
“가져갈 수도 없는 재산인데 자네가 알아서 처리해주게.”
고목에 기대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이 왜 이리도 파랗다 못해 투명한지 가슴이 뭉클해졌다.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날이 어둑해졌다. 휠체어를 밀어 집으로 향했다. 집안으로 들어왔을 때엔 이미 저녁시간이 막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친구가 먹을 수 있는 미음을 쓰고 그의 방으로 가져갔다. 친구는 미음을 몇 수저 뜨더니 삼키지 못하고 구역질했다.
“미안하네. 더 이상 먹을 수가 없겠어.”
미음자체도 먹지 못하는 친구가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그럼 우유라도 한잔 따뜻하게 데웠다 줄게.”
친구는 무기력하게 고개만 저으며 괜찮다고 표현했다.
“그러지 말고 나를 창가로 좀 데려다주게.”
친구가 원하는 대로 휠체어를 창가로 향했다. 친구는 창가로 다가가자 물끄러미 창밖으로 어두워진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욕심에 사로잡혀 뭔가를 좇아 손을 뻗게 되면 이상스럽게도 좀 더 멀리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그렇듯 사람은 최선을 다하고 순리대로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데 말이야. 욕심이란 참...”
나는 친구가 보고 있는 밤하늘을 보기 위해 고개를 창가로 내밀어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밤하늘은 금방이라도 빗줄기를 쏟아 부을 듯 먹구름으로 잔뜩 끼어있었다.
“금방 빗줄기라도 쏟아질 거처럼 보이는데.”
친구는 나를 보며 힘없이 웃으며 눈을 슬그머니 감았다.
“우리 인간들에게 기본적인 이상은 인간과 인간이었어.”
친구는 나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뜨거운 눈물 한줄기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렇게 나의 친구는 다음날 이 세계와 안녕을 고했다.
10
나는 현재 지금 친구의 마지막 유언대로 뼛가루 반을 바다로 뿌리고 반은 지금 내가 서 있는 고목에다가 뿌리고 있다. 나는 이런 유언을 남길 때 의아스럽다면 이렇게 되물어야만 했다.
“무슨 소리하는 거야. 자네가 죽으면 화장해서 반은 바다로 뿌리고 또 반은 여기 있는 이 고목에다가 뿌려달라니?”
“납골당은 싫네. 너무나도 싸늘하다 못해 너무나도 차갑잖아. 그래서 죽게 되면 좀 더 빨리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봤어.”
“그렇다고 반은 바다로 반은 고목이라니? 너무 터무니없잖아 바다면 바다, 고목이면 고목이지?”
“지금의 나의 죄가 너무 큰듯해. 그래서 그 악연을 끊기 위해 마지막 선행하는 거라고 생각해주게.”
“선행이라니?”
“내 뼛가루 반은 바다에 살고 있는 물고기들의 한 끼 식사가 되어주길 바라고, 또 고목엔 거름이 되어 좀 더 맑은 공기와 새들의 휴식처가 되어주고 싶어.”
“자네의 전 재산을 불우학생들을 위해 기부했잖아. 그 정도면 아주 큰 선행이야.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죽을 때에도 버리지 못해서 두 손에 부여잡고 가려고 하는데. 자네는 뜻 깊은 곳에 기부를 했으니까 좋은 곳으로 갈 거야. 그러니까 걱정 말고 한 곳에서 편히 쉬게.”
“사람들은 사람들만을 위해 살 수가 없다는 것을 가끔 잊고 있어. 그렇듯 자연과 동물은 하나가 되어야 해. 지구는 인간들만의 것이 아니니까.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지구를 우리 인간들만의 것으로 착각하며 살고 있어.”
“그렇다면 수목장은 어떻겠어.”
“수목장을 위해 마구 고목을 베어내고 새로운 나무를 심는다고 들었어. 오히려 자연을 파괴하고 있어. 정말 자연을 위한다면 기존에 있는 나무 밑거름이 되어야 하는 거잖아. 한 사람만의 나무가 아닌 이 지구의 나무가 되어야 해. 만약의 영혼이 실제 존재한다면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바닷가로 뿌린 내 뼛가루들을 통해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곳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이고, 고목을 통해서는 그동안 쉬지 못했던 여유를 되찾는 거라고. 그리고 가끔 고목을 통해 자네 말동무도 되어줄 수도 있을 테고....”
나는 친구의 유언대로 지금 내 집 고목아래 친구의 뼛가루를 반을 뿌리고 있다. 산다는 것은 전쟁이지만, 전쟁에서 얻은 것은 허무와 허망뿐이란 것을 이 두 친구를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종교에서 천국과 지옥이란 말을 하고 영생이란 말을 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종교에서 만들어낸 이야기일 뿐이다. 진실이 아니다. 종교에서 얘기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수학적으로 증명 된 것이 없다. 하늘나비(jun-DK)의 시간과 공간이론, 우주평면이론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우리가 살아왔던 시간이 불변의 시간이란 것을, 그리고 영생은 꿈과 같은 원리란 것이다. 과거는 불변의 시간 우리 살아왔던 시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무한궤도에서 공전하는 것이며, 꿈은 2차원과 3차원사이공간이다. 즉, 질량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감촉을 느낄 수 없지만 보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쉽게 설명하면 영생은 정신적 세계와 같다.
하늘나비(jun-DK)의 시간과 공간이론을 주목해보자면, 우리가 살아온 시간, 시간이란 것이 만들어졌을 때 그 시간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지 과거란 시간이 되며, 과거의 시간은 지구가 공전하듯 과거 역시 시공간궤도에서 무한으로 공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간이 무한 공전에서 몇 번째 혹은 수억 번째가 될 수도 있다. 즉, 이 이론을 기반으로 봤을 때 현재가 가장 중요하다. 현재 행복해야 시공간에서 자신의 행복했던 시간이 불변의 시공간으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울하고 괴로울 때엔 그 감정이 무수하게 무한으로 반복된다. 그러므로 현재 행복해야할 의무가 있는 것이며,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서 주변이 행복해야 한다. 상대성효과라고 한다. 상대방이 즐거운 얼굴일 때 그 얼굴을 보고 있는 사람도 같이 즐거움을 느낀다. 반대로 상대방이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자신도 우울해진다. 쉽게 설명하면 상대성효과는 거울효과라고도 한다. 거울 앞에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과 같다. 자신이 우울한 얼굴을 거울로 통해 확인할 때 좀 더 우울해지며, 기뻐할 때 좀 더 기분이 상승한다. 거울이 없는 상태에서 상대방 얼굴을 통해 느끼는 현상을 상대성효과다. 그처럼 현재 지옥에서 천국으로 만들기 위해선 첫 번째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강해야 한다. 두 번째 자신주변을 믿어야 한다. 세 번째 긍정적인 생각을 끄집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부정적인 경우 첫 번째 두 번째는 힘들다. 따라서 부정적인 마인드를 긍정적으로 바꿔야 한다. 긍정적인 마인드가 될 때 자연스럽게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따라오게 된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기 위해 여러 종류가 있다. 긍정적인 단어를 자주 접해야 하며, 백퍼센트 성공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찾아서 성공시켜야 잦은 성공에선 자신감이 생기게 되며 자신감은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꾼다. 반대로 잦은 실패는 긍정적인생각을 부정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러므로 큰일을 하기보다 작은 일을 하여 성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에 있어 어떤 일이든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자신에게 스스로 자주 칭찬해야 한다. 입 밖으로 나와 자신의 귀로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말이 씨가 되어 주변에서도 당신을 칭찬하게 된다.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자신을 칭찬하는 행위는 꼴불견처럼 보이기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상한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남들도 사랑할 수 있으므로 자신이 자신을 칭찬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듯 부정적인 말을 자주할 때 부정적으로 변하며, 긍정적인 말을 자주할 때 긍정적으로 변한다. 이게 진정 말에 힘이다. 말 한 마디에 살인사건이 일어나기도 살인과 자살을 막을 수도 있다. 이처럼 말 한 마디의 힘은 우리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위대하다. 단지 그것을 우리들이 깨닫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수호신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