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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비의 소소한 창작이야기1-수학이야기-
비 내리는 성탄절이브 단편 본문
그녀와의 추억
(비 내리는 성탄절이브)
1
지원은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습관처럼 머리맡에 있는 일력을 한 장을 넘긴다. 1999년 12월 24일 유난히 빨간 펜으로 도드라지게 표시 되어 있다. 지원은 왜 빨간색으로 동그라미가 처졌을까 잠시 고민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좀처럼 지원의 기억에서 12월 24일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12월 24일 무슨 날일까? 거기다가 성탄절 이브이면서 일요일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은 좀처럼 떠오르지가 않자 다시 좀더 잠을 청하기 위해 억지 잠을 청하였다. 젠장, 잠이 오지가 않는다.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다가 끝끝내 침대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지원은 욕실로 향하고 욕실 문 앞에 걸어놓은 작은 달러엔 12월 24일인 양력 밑으로 음력 11월 16일이 작게 적혀져 있다. 지원의 시선은 음력 11월 16일에 꽂히고 깊이 생각에 잠겼다. 부모님의 기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장가를 들어서 결혼기념일도 아니다. 또한 현재 십 년 동안 혼자 솔로로 살고 있다. 그렇다고 지원의 생일은 4월이다. 지원의 머리는 단지 숫자인 날짜로 인해 머리가 심각하게 복잡해져왔다.
“오늘이 무슨 날일까? 중요한 날인 것 같은데...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아... 찬 물에 머리를 담그고 나면 좀 괜찮아지겠지.”
사실 날짜에 대해 그리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날짜는 지원을 괴롭혀왔다.
“왜 이 더러운 기분이 사라지지 않는 거지...”
뭔가 모르게 기분이 텁텁해지는 그런 느낌에 빠져들어 왔다. 샤워 스프레이를 잡고 머리에 대고 찬 물을 틀어놓자 머리는 순간 차가운 물줄기에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어왔지만 좀처럼 모를 느낌에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잠옷 입은 채로 사워기 물뿌리개를 몸에다가 가져다 뿌렸다. 차가운 물주기는 몸에 닿는 순간 모든 근심 모든 스트레스가 사라지듯이 느껴졌다.
“젠장, 아침부터 왜 이러는 거지!”
지원은 욕실에서 빠져나와 새 옷으로 갈아입고 부엌으로 향했다.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어 잔에 비우고 식탁으로 다가가 앉았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 그 기억은 십 년 전 그녀의 기억이었다. 몇 년 전부터인가 그녀의 기일이 있는 날이면 유난히 바빴다. 그래서 점점 그녀의 기억이 자신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오늘은 일요일이면서 성탄절 이브였다.
“젠장, 그러고 보니... 그녀와 이별한지가 벌써 십 년이란 세월이 지나가고 있었던 거군. 벌써... 십 년이란 세월이...”
지원은 낙수 같은 시간의 흐름에 한탄이 저절로 나왔다. 우유도 마시지 않은 채 몸을 돌려 창고로 쓰고 있는 쪽방으로 향했다. 그녀와의 과거를 찾아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녀와의 추억을 담아놓은 상자들을 뒤적이다가 그녀의 일기장과 그녀의 사진들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자기야 내가 일 년 동안 자기와 사귀면서 기록한 일기장이야. 자기의 생일을 축하하는 의미로 내 마음을 선물하는 거야.’
지원은 조심스레 일기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면 넘길수록 삼 년 동안 그녀의 기억이 좀먹듯이 야금야금 조금씩 지워지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가 자기를 잠시 잊고 있었나봐.”
지원은 그녀가 남긴 일기장을 모두 읽고 나서야 쪽방에서 나올 수가 있었다. 쪽방을 나온 지원은 분주하게 외출복장으로 갈아입고, 그녀와의 기억터널 저편에 사라졌던 추억의 길을 따라 걷기로 마음을 먹었다.
2
지원은 무턱대고 그녀와 걸었던 지금 이 도심의 길거리 위를 거닐고 있다. 문득 지원의 발길을 멈추게 한곳은 꽃집 앞이었다. 꽃집 안으로 유난히 물기를 머금고 반짝이는 붉은 장미가 시선을 사로잡아 끓었다. 젠장, 이 붉은 장미는 그녀가 그토록 좋아했었던 꽃이었다.
‘자기야, 붉은 장미 꽃말 뭔지 알아?’
‘꽃말이라니?’
지원은 꽃에 관심조차 없다는 표정으로 무심하게 코대답했었다.
‘붉은 장미 꽃말은 열정적인 사랑이래. 그럼 왜 내가 붉은 장미를 좋아하는 지 알아.’
‘글쎄... 장미가 예뻐서.’
‘아냐, 나는 자기와의 사랑을 하면서부터 이 붉은 장미를 좋아하게 됐어. 특히 꽃말을 알고 난 뒤부터 열정적인 사랑, 난 자기와 내 심장을 태워버릴 그런 열정적인 사랑을 하고 싶어. 그래서 이 붉은 장미가 좋아.’
‘그런 것은 다 장사수환일 뿐이야.’
그녀가 그렇게 좋아했던 붉은 장미를 장사수환이란 말로 붉은 장미 한 송이도 사준 적이 없었다. 그녀가 떠나버린 지금 이 붉은 장미 한 송이가 아주 구슬픈 추억의 책갈피가 돼버렸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지원은 붉은 장미를 보면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져왔다. 이렇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붉은 장미를 보기조차 두려웠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한만치 붉은 장미가 너무나도 아름답게 다가왔다. 지원의 의지와 상관없이 손은 붉은 장미가 가득 들어있는 양동이로 향하였다. 양동이에서 유난히 물기를 머금은 채 반짝이는 붉은 장미 한 송이를 뽑아 코끝으로 가져다댔다. 붉은 장미의 향기가 코끝을 찌르듯 자극시켜왔다. 사실 지원은 장미의 향을 맡을 정도로 코에 후각이 뛰어나지 못했다. 지금 붉은 장미 한 송이에서 느끼는 향기는 그녀와의 즐거웠던 추억이었다. 과거의 추억이 즐거우면 즐거울수록 더욱 슬픔과 외로움에 심장을 도려내는 그런 느낌에 빠져들게 하였다. 그래서인지 지원은 그녀를 잊고자 다양한 방법을 써보았다. 그렇게 잊으려고 잊으려하면 할수록 기억의 추억은 더욱 지원을 힘들게 하였었다. 그러다가 삼 년 전부터인가 일에 빠져 살게 되었고, 일에 빠져서 살다보니. 어느새, 그녀의 기억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그렇듯 그녀는 언제나 꽃집 앞을 지날 때면 습관처럼 장미 한 송이를 뽑고 자신의 코끝으로 가져다 대곤 했었다. 사랑하면 그 사람을 닮는다는 말도 있다. 지원은 그녀의 그늘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습관처럼 했었던 행동을 무의식상태에서 따라하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렇게 붉은 장미가 갖고 싶다면 사줄 수도 있어. 근데 난 꽃은 영 마음에 안 들어.’
‘왜?’
그녀는 생뚱맞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었다.
‘아니, 그렇잖아. 꽃은 금방 시들어버리잖아. 그래서 싫어.’
‘생명이란 그런 거잖아. 나이가 먹으면 인간들도 꽃이 시들 듯 늙어 쭈글쭈글해지잖아. 그럼 자기는 내가 늙으면 싫다고 하겠네.’
‘내 말은 그게 아니잖아. 꽃이 시들면 우리의 사랑도 시들어 버릴 것만 같아서 싫다는 거잖아.’
‘난 자기를 믿어. 그리고 자기를 사랑해. 그런데 꽃이 시드는 것이 두려워하는 자기가 이해할 수가 없어.’
‘미안해... 그렇게 자기가 장미를 좋아한다면 장미를 사줄게.’
장미를 사기위해 돌아서자 그녀는 지원의 팔을 잡아끌었다.
‘됐어. 자기 마음이 중요한 거지. 장미의 의미가 중요한 게 아냐.’
‘내가 미안하다고 그랬잖아.’
이날도 그녀에게 장미 한 송이를 선물하지 못했다.
지원은 그때 그녀를 위해 장미 한 송이를 사주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지금에 와서야 마음을 다져먹고 꽃집 아가씨에게 장미 값을 지불하고 있다. 어리석게도 그녀가 없는데 말이다.
‘자기는 종교를 몇 퍼센트나 믿어.’
‘난 종교 따위는 믿지 않아.’
‘그럼 사랑은 몇 퍼센트나 믿어.’
‘그게 단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그러는 자기는 몇 퍼센트를 믿는데.’
‘사랑... 그게 칠십 퍼센트 정도.’
‘그럼 삼십 퍼센트는 왜 안 믿는 거야?’
‘그건 안 믿는 게 아냐.’
‘그럼?’
‘사랑은 우리들이 믿는다고 전부 이루어진다면 누구나 사랑을 영원히 보존하고 행복하게 살 수가 있어. 그러나 악마는 그렇게 다주지 않아.’
‘그럼 우리들의 사랑을 어떻게 하면 백을 채울 수가 있는 건데.’
‘그건 믿음과 신뢰로 삼십 퍼센트를 채워야해. 그래야 사랑의 백이 나온다고 그랬어.’
지원은 꽃집에서 붉은 장미 한 송이를 들고 그녀와 같이 걸었던 길거리를 거닐고 있다. 지원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한 것은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젊은 연인의 과감하고도 쇼킹한 행동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이렇게 수도 없이 다니고 있는 길거리에서 너무나도 당당하게 남녀가 부둥켜안고 키스를 하는 그런 장면에 지원은 자신도 모르게 볼이 붉게 달아올랐다. 보는 이로 하여금 그런데 당사자들은 오히려 당당하고 떳떳했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외국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길거리 키스. 직접 눈으로 그런 젊은 연인의 모습에 헉하고 숨이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고 보니, 지원에게도 그녀와의 첫 키스가 있었다. 그때 그 기억이 가물가물 거려왔다.
그녀가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 팔을 확 끌어당겨 기습 키스를 했었다. 그녀는 당황하여 지원을 밀치고 집안으로 황급히 뛰어 들어갔었다. 이렇게 기습 키스를 했었고, 이 키스는 그녀를 사랑한다는 점이 아니라 너는 이제 내거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 당시엔 키스는 도장이라고 표현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키스정도는 별 의미가 없어 보이기까지 했다. 툭하면 길거리에서도 당당하게 하니까 말이다. 물론 그런 키스는 그런 키스만의 스릴과 맛이 있을지도 모른다. 십 년 전만해도 이런 길거리 키스는 상상불가였다. 지금 그녀가 자신의 곁에 있다고 한들 저들처럼 저돌적이며 과감하게 길거리 키스를 하지 못할 것이다. 이렇듯 십여 년이란 세월의 시대 차이를 느껴야만 했다.
지원은 한 번 키스를 하려면 주위에 사람이 없는지부터 확인을 하였고 으슥한 곳에서 암암리 해야만 했었다. 사람이라도 볼까봐 두려움 속에서 도둑질하는 사람의 심정으로 키스를 했었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길거리 키스보다 몇 배 스릴이 넘쳤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어왔다. 길거리 키스는 스릴을 느끼기엔 좋다고 하지만, 사실은 숨어서 하는 키스만큼 스릴을 만끽할 수가 없다. 길거리나 공공장소에서 키스는 사람들 앞에서 우리는 서로 사랑하니까 다른 사람들은 넘보지 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지만 그런 의미를 담고 길거리에서 키스를 하더라도 수많은 연인들이 깨지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지금의 연인들은 지원의 시절보다 열정적인 사랑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진실한 사랑을 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이별에 대한 배려가 없이 순간적인 충동 심에 이끌려 사랑하는 현재 젊은이들이 부럽기도 했지만 안타깝기도 했다.
지원은 소공원 벤치에 앉아있다. 그녀와의 키스의 기억이 선명하게 살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늦은 밤이었었다. 가로등도 없는 으슥한 벤치에 앉아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보고 있었었다. 첫 키스, 도둑키스에서 느끼지 못한 그 아름다운 키스를 상상하면서 제대로 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어서인지 그녀의 눈이 마주치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왔다. 마른침만 꿀꺽꿀꺽 삼키기까지. 지금 이십대 초반들에게 얘기하면 너무 유치하다고도 할지도 모른다. 환경과 풍습은 십여 년이란 세월 속에 경제속도와 맞물러 급속도로 성장하였기 때문이다.
‘자기야...’
지원은 밤하늘에 떠있는 별을 보고 있는 그녀에게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응, 왜?’
‘나... 자기하고.. 할 것이 있는데..’
‘왜 그래? 갑자기 말까지 더듬고.’
‘나... 자기에게... 키스해도 될까?’
지원은 뜸을 들이며 말까지 더듬으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는 눈을 슬그머니 감아주었다.
‘응.’
‘고마워.’
지원은 자신의 주둥이를 그녀의 입으로 가져다대려고 해봤지만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너무 뜸을 들이자 그녀는 눈을 게슴츠레 떴다.
‘왜 그래?’
‘아니 막상하려니까 심장이 떨려서...’
‘그럼 내가 다가갈까?’
순진하고 수줍음이 많았던 그녀의 적극적인 모습은 당황스럽게 했다. 아니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녀는 자신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할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었다. 그걸 그때는 왜 몰랐었는지. 지원은 지금에 와서 후회가 막심했다.
‘아냐, 그래도 내가 남잔데.’
지원은 눈을 질끈 감고 그녀의 입술로 다가가 포갰다. 정말 키스란 것이 입술과 입술만이 포개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현재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그런 혓바닥까지 서로 입속으로 담는 것이란 것은 정말 상상도 못했었다. 그래도 입술과 입술이 포개지는 순간 정말 황홀했었다. 입술로 통해 들어오는 그녀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지원은 지금 그런 그녀가 없이 혼자 달랑 쓸쓸하게 그때 그 벤치에 앉아있다. 눈을 감고 있으면 금방이도 ‘자기야 언제부터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부르며 옆자리로 다가와 앉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지그시 눈을 감아보았다. 그러나 그런 기적은 그 어디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3
지원은 벤치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그녀의 추억 그녀와의 원초적인 키스를 했었던 그 장소에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있다보니, 그녀의 목소리라도 듣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들어 왔기 때문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소공원을 빠져나가는데 십여 년 전에도 있었던 그 장소에 그 빨간 공중전화부스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지원은 가끔 이곳에서 그녀를 기다리면서 공중전화로 그녀에게 빨리 오라고 호출을 수도 없이 했었다. 그때, 그 공중전화부스가 십여 년 동안 한걸 같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원은 문득 이 공중전화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면 그녀가 받을 것만 같다는 착각에 빠져들어 왔다.
공중전화부스 안으로 들어가 주머니를 뒤적이고 백 원짜리 동전을 꺼내 동전삽입구로 삽입하고 번호를 누르자 공중전화 송수화기에서는 단순한 멘트가 흘러나왔다. ‘지금 거신 전화번호는 없는 국번이오니, 다시 한 번 확인하시고 걸어주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지원의 귀에는 그녀가 사랑스럽게 속삭이듯 착각에 빠져들었다.
“자기야, 왜 그래? 힘들어?”
“응, 자기가 너무나도 보고 싶어서 죽겠어.”
“그래도 지금껏 잘 참아냈잖아. 그러니까 조금만 더 참아. 그럼 금방 우리들이 다시 만날 수가 있을 거야.”
“그래도 자기를 너무 보고 싶어. 미칠 것만 같아.”
“우리는 사랑하잖아. 몸이 떨어져도 하나잖아. 나는 자기 마음속에 영원히 같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자기야 힘내.”
“그래 자기는 영원히 내 마음속에 있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기의 얼굴이 기억이 떠오르지가 않아.”
“원래 그런 거래? 가까운 사람은 머리에서 기억으로 남는 것이 아니래? 마음속에 문신하듯 심장에 문신으로 남는 거래? 그러니까 기억 속에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몰라?”
“그럼 자기를 보고 싶어 죽을 것만 같은데. 어떻게 해?”
“마음으로 보면 되잖아. 생각 따위가 아닌 마음으로.”
“마음으로...”
“응, 마음으로.”
“난 이상하게 마음의 문만 열면 비가 내려.”
지원은 그녀를 마음으로 생각하다가 수없이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을 하염없이 흘러내렸었다.
“자기 얼굴 자기의 향기가 그리워 미치겠어.”
이 자체가 그리움에서 만들어낸 잠시 착시환청이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대화였다. 또한 지원은 그녀를 삼 년 동안 완벽하게 잊고 소처럼 일에 빠져있었다는 사실이 더욱 자신을 괴롭혔다. 그 당시에 ‘너 없으면 나도 못살아. 네가 죽으면 나도 따라 죽을 거야’라는 달콤한 얘기를 수도 없이 했었고, 또 그렇게 할 생각이었었다. 그러나 그녀가 곁을 떠나버린 현재도 이렇게 거짓말쟁이로 살고 있다.
십여 년 전 공중전화 문화는 지금과 달랐다. 카폰이 있었고, 핸드폰은 사업가들이나 부유층의 산물이었었다. 또한 핸드폰은 지하로 들어가면 터지지도 않았었다. 여하튼 호출기가 유행했었고, 호출기를 허리에 차고 다녔다. 그래서 공중전화부스엔 언제나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서 기다렸었다. 그런데 지금 뒤로 단한 명의 사람도 전화를 걸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은 없다. 호출기는 개 줄이라고 했었다. 길을 가다가 호출기에 8282(빨리빨리)란 숫자를 뒤로 달고 하였었다. 퍽이나 성질 급한 우리네들은 전화를 걸기위해 공중전화를 찾아가면 공중전화부스 뒤로 줄을 만들어놓았다. 전화 한 통화하기 위해서는 보통 십분 이상은 기본적으로 기다려야만 했었다. 그 당시 쇼킹한 얘기들이 생각이 난다. 특히 무더운 날엔 불쾌지수가 높아지며 사건이 수도 없이 일어났었다. 공중전화를 빨리 끊지 않는다면 싸움은 수도 없었었다. 심지어 전화를 너무 오래한다면서 사람을 죽이는 살인사건까지 일어났었다. 이런 쇼킹한 시대의 풍자는 호출기의 악령이었다. 그처럼 성질 급한 우리네들에게 호출기란 극약과도 매한가지였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현재 휴대전화가 급 발전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이런 속도로 통신에 발달을 거듭하다간 하늘나라와 연결하는 전화기도 나오지 않을까하는 바람을 갖게 만들었다. 그럼 그녀의 목소리를 또릿또릿하게 들을 수가 있을 테니까.
4
지원은 어느새 공중전화부스에서 빠져나와 그녀의 발자취를 따라 다시 걷고 있다. 하늘은 어느새 느릿느릿 어둠만이 내려앉고 있다. 십여 년 전 그녀와 함께 걸었던 길거리를 홀로 외로이 거닐고 있다. 지원의 발걸음을 다시금 멈추게 한 것은 음악소리 때문이다. 사랑과 영혼이란 영화에 삽입된 곳인 ‘Unchained Melody’ 귓속으로 들려왔다.
‘자기야, 이 노래 기억나.’
‘글쎄? 난 음악과 담을 쌓아서.’
‘왜 올 봄에 같이 영화극장에서 봤잖아. 사랑과 영혼 말이야.’
‘아, 맞다. 그러고 보니까 멜로디가 많이 낯익네.’
지금 지원이 서 있는 곳은 십여 년 전 과거엔 레코드 가게가 있었던 그 장소였다. 그러나 현재 이 거리 그 어디서도 레코드 가게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단지, 그 레코드 길거리엔 성인오락실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상막한 도심. 그때는 단순히 음악소리가 좋아서 길을 걷다가도 발걸음을 멈추게 했었던 그 거리는 사라진지가 오랬다.
‘그때 사랑과 영혼의 주인공들이 부럽더라.’
그녀는 노래에 심취해 눈을 슬그머니 감고 입을 열었었다.
‘뭐가?’
‘그렇잖아?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서도 그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들이 너무 감동적이잖아.’
‘그건 단지 영화소재일 뿐이야.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영혼이 돌아올 수가 있겠어. 그리고 영혼이 사람과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얘기일 뿐이야.’
‘꾸며놓은 얘기지만 사랑을 위한다는 점은 너무나도 아름답잖아. 난 그 영화를 보고 내가 자기보다 먼저 죽게 된다면 내가 자기의 수호천사가 되어줄 거라고 다짐했는데.’
그녀는 단지 달콤한 사탕발린 소리가 아닌 진지한 모습이었었다. 지원은 그런 진지한 모습이 오히려 부담스럽게 느껴질 정도였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녀를 위해서 따뜻한 답변을 해주지 못한 게 너무나도 후회스러워졌다. 단지 말 한마디인데 돈이 드는 것도 그렇다고 누구에게 허락받는 것도 아닌데 단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포장하는 것일 뿐인데... 이런 무뚝뚝한 성격이 정말 싫었다.
‘그럼 나는 자기보다 먼저 죽으면 뭐가 되어야 하지?’
‘난 자기가 죽으면 바로 따라 죽을 거야. 그러니까 자기는 그냥 그 자리에서 그대로 기다리고 있어 주기만 하면 돼.’
‘그럼 나도 자기가 죽으면 따라죽을게.’
‘그럼 우리 여기서 명세할까?’
‘뭘?’
‘우리가 태어난 시간과 장소가 다르지만 죽는 그 순간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함께 떠나기로.’
그녀는 단순한 거짓말에 행복해 했었다. 정말 그 당시엔 진심이었었다. 그녀가 죽는 날 같이 하게노라고, 그러나 사람이란 죽음 앞에서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벌써 그녀를 떠나보낸 지 십 년이란 세월 속에서도 꿋꿋하게 홀로 이렇게 살고 있다.
그런 추억이 담긴 길거리 레코드 가게들은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단지 주변을 돌아보면 성인오락실들이 길거리를 즐비하게 늘어서서 추억을 갈아먹어버리고 있었다. 지원은 추억이 사라진 건물과 길거리에 서서 성인오락실로 드나드는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보게 되었다. 뭔가 중독 되어 있는 그런 얼굴들이었다. 불안감과 초조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잠시 그들을 보고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왜 도박 게임을 하는 걸까? 따지도 못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면서 말이다. 옛말에 도박은 패가망신이란 말이 있다. 그러면서도 성인오락실, 경마, 카지노, 레저스포츠, 복권 등등 국가에서 허가를 내주고 부축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놀음은 패가망신이란 말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리는 형태였다. 참으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려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래 다 좋다. 다 좋은데 그녀와의 사랑의 추억까지 썩어버리는 이 더러운 느낌은 누가 보상해줄 것인가? 추억을 찾아 왔건만 추억은 간곳이 없고, 단지 성인오락실만이 과거 추억의 장소에 자리를 잡고 있다. 젠장! 더러워진 세상.
지원은 빠른 걸음으로 한때 추억이 깃들어 있었던 길거리를 빨리 벗어나야만 했다. 그들 성인오락 도박의 중독 되어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심장 어디선가 치밀어 오르는 듯한 분노를 차마 이겨낼 수가 없었다.
느릿느릿 어둠이 내리던 길거리는 어느새 짙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지원은 더러워진 만능물질주의로 퇴색 돼버린 길가를 빠져나와 그녀와 자주 찾아갔었던 찻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그 찻집은 커피 전문점으로 바뀌어 있었다. 인테리어도 어디 하나 그때 그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창가 편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창가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십칠 년 전 그녀를 처음 만났었을 때의 기억이 떠올렸다. 그녀는 언제나 이 자리에 앉아 말없이 창가 밖을 내다보고 있었었다. 그녀가 앉아있는 창가로 해가 지고 있었었고, 그날 햇살이 유난히 강렬했었다. 그녀와 강렬한 햇살은 참으로 환상적인 모습이었었다. 긴 머리에다가 뽀얀 피부를 가진 그녀는 햇살에 빛이 바랬었다. 첫 눈에 반한다는 말이 믿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날 그녀의 모습에 심장이 멈추듯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버렸다. 그 후 지원은 그녀가 오는 시간에 맞추어 이곳에 왔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용기를 내고 그녀에게 대시를 하였었다.
‘아가씨는 이곳에 자주 오시나 봐요.’
그녀는 새침둥이처럼 지원을 한 번 힐끗 쳐다보더니, 이내 다시 창가로 고개를 돌려버리는 것이었다. 지원은 자존심이 상할 정도로 무안했었다.
‘저기요? 사람이 말을 했으면 대답을 해주는 것이 기본 예의가 아닐까요?’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돌려 지원을 보며 배시시 웃는 것이었다. 지원은 그런 그녀를 보고 왜 웃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얼굴이 붉어지며 입을 열었다.
‘아저씨, 남대문이 열렸어요.’
지원은 바지에 지퍼가 열린 것을 확인하고 황급히 도망치듯 그 자리를 피해야만 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정말 운명처럼 그녀와의 그 찻집에서 미팅하게 되었다. 지퍼 사건 그 당시에 기억이 떠오르자 배시시 미소가 감돌아왔다. 지금 앞으로 그녀가 나타날 것만 같다는 생각에 출입문 쪽으로 고개를 들어보았다. 역시나 그녀는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았다. 커피를 다 마시고 다시 쓸쓸하게 무거운 몸을 일으켜 그녀의 추억을 좇아 길가로 나와야 했다. 길거리는 어느새 어둠이 짙게 내리깔려 있었고, 사람들도 드문드문 보였다.
5
지원은 그녀의 집 앞에 다다라있다. 그녀의 방인 이층이 잘 들어나는 곳에 서서 그 방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깜깜했던 그녀의 방안은 누군가가 들어왔는지 이내 방안이 환해졌다. 커튼 사이로 실루엣으로 보이는 긴 생머리의 여자다. 그 실루엣 여자를 보는 순간 참았던 지원의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지금 저 방엔 그녀가 살아서 돌아온 것이 아닐까하는 착각이 잠시 일었다. 지원은 자신의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꺼내 버튼을 누르려고 해보았지만 기억 속엔 그녀의 전화번호가 없었다. 그 당시엔 호출기만이 존재했었다. 지원은 기억을 최대한 끌어올려 그녀의 호출기 번호를 기억해냈다. 번호를 누르고 통화버튼을 눌렸다. 그러나 그 번호는 그녀가 떠나면서 같이 사라진 번호였다.
“자기 호출기가 안 되네. 왜 안 되는 거야. 자기의 모습이 저기 저렇게 보이는데...”
창가로 두터운 커튼 사이로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는 여자를 포옹하더니 이내 키스를 했다. 그 장면에 지원은 그녀가 죽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왜 이러는 거지. 자기가 죽은 지 올해로 십 년째인데. 바보처럼 아직도 자기를 잊지 못해 이곳에 오다니. 젠장, 자기를 이렇게 잊지 못할 거라면 그때 같이 따라 죽었어야 했었는데. 바보멍청이처럼...”
눈물이 뺨으로 흘러내려왔다. 하늘에서 빗줄기는 이런 지원의 마음이라도 알고 있다는 듯 뚝뚝 뺨으로 떨어졌다. 실루엣으로 보이는 연인들의 모습에서 절실해졌다. 그녀의 숨소리를 느껴보고 싶다. 그녀와의 키스를 느껴보고 싶다. 그러나 어둠이 내리듯 그녀는 곁에 없다. 찾아가고 싶지만 아직도 용기를 내지 못하고 이렇게 십 년이란 세월 보내고 있다. 누가 얘기를 했던가? 추억은 과거의 존재하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다고, 젠장! 아름답기는커녕 지금 자신을 미치게 만들어버리고 있는데.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착시현상을 만들어내고 착시는 자신을 하여금 지옥의 고통을 느끼게 했다. 이처럼 그녀의 추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니 헤어나고 싶지가 않은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렇게 십 년이란 세월에서도 그녀를 마음속에서 떠나보내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야 그녀를 마음 깊은 곳에서 떠나보낼 수가 있을까....
그녀의 집에서 돌아 서서 큰길가로 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그녀의 뼛가루가 뿌려진 바닷가가 있는 작은 동네로 찾아왔다. 늦은 시간이라서인지 작은 마을은 불들이 모두 꺼져 있었다. 성탄절이브 밤인데도... 구멍가게를 찾아가 문을 두들겼다.
“저기요. 안에 아무도 안 계세요.”
이내 구멍가게는 불이 켜지더니 나이가 지긋해 보이시는 할머니 한 분이 문을 열어주셨다.
“누구여? 누군데. 이 시간에 가게 문을 두드리는 거여?”
“할머니 죄송합니다. 뭐 좀 살게 있어서요.”
지원은 그녀를 찾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맨 정신으로 그녀를 만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소주를 사기 위해 주무시는 할머니를 깨우게 된 것이다.
지원은 소주를 나발을 불며 절벽위에 앉아있다. 그녀가 왜 십 년 전 음력 11월 16일 자살이 아닌 자살을 하였는지 궁금했었다. 그러나 그 이유는 그 누구도 모른다. 그녀의 죽음은 이랬다. 감기약과 수면제 과다복용이었다.
그녀가 죽기 전날 잠시 만났었다. 그녀는 며칠 밤샌 작업하느라 몸살이 들었다면 일찍 집으로 돌아가서 자야겠다고 했었다. 그리고 다음날, 그녀는 싸늘한 시신으로 변했다.
“자기야, 더 이상 자기의 기일 때마다 죄책감으로 시달리면서 자가와의 추억을 되돌아 다니기가 너무 힘들어... 그래서 그동안 용기 내지 못했던 것을 오늘 용기를 낼까해...”
지원은 구멍가게에서 사온 소주 대여섯 병을 다 비우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술기운에 휘청거리며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몇 번이고 일어나다가 주저앉고 그렇게 겨우 일어나곤 낮에 장미 한 송이를 샀던 장미 한 송이를 그녀가 잠들어있는 바닷가로 보냈다.
“자기가 그렇게 좋아했던 붉은 장미야. 자기가 그렇게 좋아했던 붉은 장미라고, 그러니까 내가 너무 늦게 자기를 찾아간다고 화를 내지 않았으면 좋겠어. 자기야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지원은 술기운을 빌려서 그녀가 잠든 절벽 밑 바닷가로 몸을 내던졌다.
‘자살하면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말이 있다. 그녀가 자살을 한 것이라면 나 또한 지금 자살을 한다. 그러므로 그녀를 지옥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럼 그 지옥불구덩이의 고통을 대신 받아줄 것이다. 지옥이라고 할지라도 나는 그녀를 위해 붉은 장미를 피워줄 것이다. 그래서 지금 붉은 장미 한 송이를 들고 간다.’
지금쯤 사람들은 대형 트리 앞에서 서로서로 손에 손을 맞잡고 흥겹게 캐럴을 부르며 춤을 추며 성탄절을 만끽하고 있을 것이다.